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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항쟁 : (6) 대한민국 민주화의 전환점, 6.10 민주항쟁과 그 영향

이모는 2025. 8. 18. 23:58

직선제 쟁취를 위한 국민의 힘
1987년 대한민국의 거리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랜 군사정권 아래 억눌린 자유와 정의에 대한 열망이 폭발하던 순간, 바로 6.10 민주항쟁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시위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전환점으로 기록됩니다.
 
 
 

1987년 6월 26일 부산직할시 남구 문현동 문현로터리에서 촬영된 이미지
한국 민주항쟁 : (6) 대한민국 민주화의 전환점, 6.10 민주항쟁과 그 영향 /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6.10 민주항쟁의 배경 – 폭발 직전의 사회 분위기

1980년대 중반 한국 사회는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자유가 크게 억압된 상황이었습니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권위주의적 통치와 간선제 대통령 선거 제도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차단했습니다. 국민들은 자유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했지만 정권은 이를 탄압으로 맞섰습니다.
 
그러던 중 1987년 1월, 서울대 학생이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그의 죽음은 정권의 폭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었고, 당국의 은폐 시도는 오히려 국민적 분노를 촉발했습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변명은 당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며 정권 불신을 극대화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민주화 열기에 불을 붙인 기폭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분노에서 행동으로 – 6월 항쟁의 전개

박종철 사건 이후, 사회 각계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졌습니다. 학생운동뿐 아니라 종교계, 재야 인사, 노동자,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하며 투쟁의 외연이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1987년 4월에는 또 한 명의 학생, 이한열 열사가 시위 중 최루탄에 피격당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긴장은 마침내 1987년 6월 10일, 전두환 정권이 후계자로 노태우를 지명한 날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열린 ‘국민대회’에는 수십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히 명동성당 농성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성당은 민주 세력이 모여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외신을 통해 한국 민주화 요구가 국제적으로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6월 10일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평화적인 시위가 이어졌으며, “호헌 철폐, 독재 타도”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습니다. 시위의 물결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정권은 강경 진압만으로는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변화의 시작 – 6.29 선언

시민들의 힘은 마침내 권력을 움직였습니다. 군사정권은 더 이상 국민적 열망을 억누를 수 없었고, 결국 1987년 6월 29일, 당시 여당 대표였던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 조치를 수용하는 이른바 **‘6.29 선언’**을 발표합니다.
 
이 선언으로 국민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대통령 직선제가 현실화되었고, 정치적 민주화의 큰 물줄기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시민의 힘이 직접적으로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6.10 민주항쟁이었던 것입니다.
 
 

6.10 민주항쟁이 남긴 의미

6.10 민주항쟁은 단순한 정치 투쟁이 아니었습니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집단적 힘으로 권력에 맞서 변화를 이끌어낸 역사적 사건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전환점이었습니다.
 
첫째, 국민 참여의 진정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전까지 민주화 운동은 특정 세대나 집단의 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6월 항쟁은 청년, 노동자, 종교인, 시민 등 전 사회 계층이 모두 참여한 범국민적 운동이었습니다.
 
둘째, 민주주의는 결코 타인의 시혜가 아닌,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가치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스스로 민주화를 선언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압도적인 요구에 굴복해 개헌을 수용한 것입니다. 이는 “민주주의는 국민의 힘에서 나온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셋째, 이후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직선제 개헌 이후 실시된 1987년 대선은 비록 군사정권 출신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이후 평화적 정권 교체로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오늘날의 시사점

6.10 민주항쟁을 돌아보면, 민주주의는 완결된 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켜내고 발전시켜야 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당시 국민들이 거리에서 외친 목소리는 단지 정치 구조의 변화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더 공정한 사회, 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열망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롭게 선거를 치르고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 정치 불신, 세대 갈등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6월 항쟁의 정신을 이어받아 “시민의 힘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되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이 글을 마치며,
1987년의 6.10 민주항쟁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시민이 주체가 되어 민주화의 길을 연 상징적 사건입니다. 국민의 목소리가 모여 독재 권력을 무릎 꿇게 했고, 직선제 개헌이라는 소중한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 또한 수많은 시민들의 용기와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성취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결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일깨워 준 6월 항쟁의 정신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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