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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화폐 ‘건원중보’와 경제 제도 도입의 역사적 의미
한국 최초의 공식 금속화폐인 건원중보(乾元重寶)는 고려 성종 시대(996년)부터 주조·유통되기 시작한, 우리나라 화폐 역사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건원중보(乾元重寶)는 둥근 형태에 중앙이 네모난 구멍(형원공방)의 전통적인 엽전의 외형을 갖춘 철전(鐵錢)·동전(銅錢)으로, 앞면에는 ‘乾元重寶’(건원중보)라는 글자, 뒷면에는 ‘東國’(동국)이 새겨져 고려의 독자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화폐임을 분명히 합니다.

건원중보의 발행 배경과 발행 목적
고려는 선진 중국 문물의 영향을 받아 경제제도의 근대화를 추진하며, 당나라 숙종(758~760) ‘건원중보’를 모델로 자체 화폐를 만들었습니다. 국가 주도의 금속화폐 도입 배경에는 상업의 발달, 국가 재정 운영의 체계화, 중앙 집권 강화, 궁극적으로 실물화폐(쌀, 베 등) 위주의 봉건적 교환 시스템의 한계 극복이 있었습니다. 화폐 유통 확대를 목표로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상점, 식당 등 제한된 공간에서 사용되었고, 대다수 백성들은 여전히 포화(布貨)·실물화폐에 의존했습니다.
건원중보의 역사적 의의
건원중보는 여러 측면에서 한국 화폐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국가 명의의 금속 주화가 정식 발행된 최초 사례로 실물과 기록이 모두 남아 있어, 확실하게 실증 가능한 한국형 화폐제도의 출발점을 보여줍니다. 둘째, 당나라 화폐를 따르면서도 뒷면에 ‘동국’이라는 고유 표기를 새김으로써 중국 모방에서 한 단계 나아간 고려 독자성의 표현이라는 점입니다. 셋째, 비록 사회적 기반이 부족해 단기간(6년)만 유통되고 폐기되었으나, 이후 해동통보, 삼한통보 등 후속 화폐정책의 길을 열었으며, 전국 시장경제와 중앙정부 재정 운영 기반을 만드는 교두보가 됐습니다.

건원중보와 해동통보의 비교
건원중보와 해동통보는 모두 고려 시대에 발행된 대표적 금속 화폐지만, 두 화폐에는 발행 시기와 목적, 특징에서 명확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주요 차이점 비교
| 구분 | 건원중보 | 해동통보 | 
| 발행 시기 | 성종 15년(996년) | 숙종 7년(1102년) | 
| 발행 배경 | 중앙집권 강화, 당 화폐 모방, 경제 제도 실험 | 상업 진흥, 화폐 유통 적극 장려 | 
| 재질 | 철전(일부 동전) | 동전(구리 동전) | 
| 글자/디자인 | 앞면 ‘乾元重寶’, 뒷면 ‘東國’ 표기 | 앞면 ‘海東通寶’, 뒷면 무표기 | 
| 유통 방식 | 제한적, 실물화폐 병행 | 관리, 군인에 배분, 상점·음식점 등 관영 유통 | 
| 사회적 효과 | 최초 금속화폐 시도, 실제 유통 미미 | 정부 주도 유통 확대 시도, 실제로도 확산 실패 | 
| 역사적 의의 | 한국 첫 공식 주화, 국가 경제 제도 도입 상징 | 대량 주조·유통 시도, 후속 화폐체제 기초 | 
건원중보는 성종 대 철전 중심, 상업·교역의 확대를 전제하여 당나라 화폐를 모방해 최초로 국가 주도로 발행된 화폐였으나, 사회경제적 기반이 부족해 대중적인 유통에 실패했고, 해동통보는 상업 진흥 및 상품경제 촉진 목적에서 소액거래 편의를 위해 대각국사 의천 건의로 발행된 구리 동전(1102년)이었으며, 정부는 관영 상점‧음식점 등에서 활용하도록 적극 장려했으나 역시 사회적 정착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로써 두 화폐 모두 실질적으로 대중적 통화로 자리잡지 못했으나, 이후 삼한통보, 은병, 해동중보, 동국통보 등 추가 화폐 도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건원중보의 출토 사례와 문화 재적 가치
건원중보는 1910년대 초 개성 근교 고려 고분에서 실물 철전·동전이 함께 출토되어 그 실체가 확실히 입증됐습니다. 황해도, 평안도 일대 사찰과 후대 고분 유적 등에서도 다수의 건원중보가 발굴된 바 있습니다. 이는 고려 경제 정책 운영의 실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일 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실물화폐 도입·운영의 현장 증거로 평가받습니다.
- 1910년대 초, 개성 부근의 고려 고분(무덤)에서 최초로 건원중보가 출토되었으며, 철전과 동전이 함께 발견된 것도 특징입니다.
 - 황해도 사리원 지방의 고분에서도 소형 철전이 부장품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출토된 건원중보는 고려 성종 때 발행된 실제 화폐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상인‧주민들이 사용했던 흔적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입니다.
 
이처럼 건원중보는 고려 고분 등 역사적 현장에서 다수 출토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로서 문화적‧경제적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려 건원중보의 오늘날 의미
오늘날 건원중보는 한국 경제사·화폐사 연구의 핵심 키워드이자, 고려 시대의 상업 발달, 화폐 경제의 도입, 중앙집권적 재정 정책 강화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한 고분 유물·출토사례, ‘동국’ 표기의 문화재적 가치, 후대 화폐정책과 극명한 연관성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경제 제도의 근대화·혁신, 그리고 국가 주도의 화폐제도의 상징적 성공과 실패 양면을 모두 보여주는 유례없는 사례로, 오늘날까지 소중한 역사적·교육적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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