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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 7

고려 건원중보와 해동통보, 고려시대 경제 제도와 화폐 유통의 모든 것

목차 고려 화폐 ‘건원중보’와 경제 제도 도입의 역사적 의미한국 최초의 공식 금속화폐인 건원중보(乾元重寶)는 고려 성종 시대(996년)부터 주조·유통되기 시작한, 우리나라 화폐 역사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건원중보(乾元重寶)는 둥근 형태에 중앙이 네모난 구멍(형원공방)의 전통적인 엽전의 외형을 갖춘 철전(鐵錢)·동전(銅錢)으로, 앞면에는 ‘乾元重寶’(건원중보)라는 글자, 뒷면에는 ‘東國’(동국)이 새겨져 고려의 독자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화폐임을 분명히 합니다. 건원중보의 발행 배경과 발행 목적고려는 선진 중국 문물의 영향을 받아 경제제도의 근대화를 추진하며, 당나라 숙종(758~760) ‘건원중보’를 모델로 자체 화폐를 만들었습니다. 국가 주도의 금속화폐 도입 배경에는 상업의 발달,..

공민왕의 개혁과 신돈, 신진사대부의 부상 :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진 변화

목차 고려 말은 정치적 혼란과 외적 침략, 그리고 사회 구조의 깊은 부패가 뒤엉킨 시기였습니다. 그 중심에 공민왕의 개혁과 이를 뒷받침한 신돈, 그리고 새로운 정치 세력인 신진사대부의 등장이 있었습니다. ‘공민왕 개혁’, ‘신돈’, ‘신진사대부’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고려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 이 시기를 살펴보겠습니다. 공민왕의 즉위와 과감한 개혁의 시작공민왕(재위 1351~1374년)은 원나라의 간섭과 고려 사회를 지배하던 권문세족의 횡포를 혁파하고, 왕권을 강화함으로써 나라를 새롭게 일으키려 했습니다. 즉위 직후 그는 친원 세력을 정리하고, 원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제·의복·연호 등을 고려식으로 되돌렸습니다. 특히 부패한 권문세족의 토지ㆍ노비 문제 해결, 그리고 새로운 ..

몽골 원 정치적 혼인과 고려 공녀 문제의 역사적 진실

목차 몽골 원과 고려의 정치적 혼인과 공녀 문제는 고려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외교적·사회적 사건으로, 당시 고려의 권력 구조와 사회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본 글에서는 고려와 몽골 원나라 간 통혼 정치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공녀 제도가 고려 사회에 끼친 영향과 반발 사례를 중심으로 심층 분석해 보겠습니다. 몽골 원과 고려 왕실의 정치적 혼인 배경과 목적 고려는 13세기 몽골 제국의 팽창과 함께 원나라와 강한 외교적, 군사적 긴장 관계에 놓였습니다. 고려는 외교적 생존과 권력 안정을 위해 몽골 원 황실과 정치적 혼인을 추진했습니다. 1270년 충렬왕은 원나라 제국대장공주의 손녀와 혼인하여 정치적 동맹을 강화했고, 이는 ‘부마국 체제’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몽골 원과의 정치적 혼인은 단순한..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과 신라 계승 및 풍수지리 신앙 대립

목차 고려 중기인 12세기, 나라가 외세의 침입과 내부 분열로 위태롭던 시기, 묘청(妙淸)이라는 승려 겸 정치인이 등장해 강렬한 개혁과 변혁의 꿈을 품었습니다. 바로 그의 주도 아래 일어난 서경천도 운동은 단순한 수도 이전을 넘어 정치, 사상, 민족 의식의 깊은 대립을 드러낸 역사적 사건입니다. 특히 신라 계승 의식을 중시하던 개경 중심 세력과 묘청파 사이에 풍수지리 신앙을 매개로 한 첨예한 갈등이 벌어진 점이 주목됩니다.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배경과 전개묘청은 서경, 즉 지금의 평양 출신으로서 고구려의 옛 땅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민족주의적 정신을 지녔습니다. 당시 고려의 수도 개경은 문벌 귀족과 보수 세력이 장악한 현실이었고, 정치 권력은 점차 중앙에 집중되는 가운데 지방 세력의 불만도 컸습니다...

고려 말 농민봉기 대표 사례, 김사미·효심의 난과 사회적 의미

목차 김사미·효심의 봉기 등 농민·천민 저항운동은 고려 말기 1193년(명종 23년)에 사회 혼란과 무신정권의 가혹한 지배에 맞서 일어난 대표적인 민중 저항 사례로, 한국사의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입니다. 이 봉기는 농민과 천민 출신인 김사미와 효심이 각각 운문과 초전을 중심으로 농민군을 규합하여 연합 투쟁을 벌였고, 중앙 정부의 강압에 저항하면서 한동안 경상도 일대를 흔들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김사미·효심 봉기의 배경과 발단12세기 말 고려는 무신정권이 집권하며 중앙 권력은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는 대신 고질적인 부패와 가혹한 조세 수탈이 만연해졌습니다. 특히 농민과 천민들은 무거운 조세와 부역, 고리대금업자의 착취에 시달리며 극심한 생활고에 직면했습니다. 이에 농민과 천민들은..

고려의 수도 개경(송도)과 벽란도, 국제 무역항과 아라비아 상인

목차 고려의 수도 개경(開京, 송도)은 오늘날의 개성에 해당하며, 동아시아 중세 시기에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한 도시였다. 특히 개경 인근의 벽란도(碧瀾渡)는 고려를 대표하는 국제 무역항으로, 송(宋), 일본, 여진뿐 아니라 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드는 세계적 무역 교류의 장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해상 실크로드의 중간기착지로서, 고려의 선진적인 개방성과 경제력을 보여주는 핵심 거점이었다. 고려의 수도 개경(송도)의 국제적 위상개경은 정치·행정의 중심지이자 무역과 문화의 교류가 활발했던 국제 도시였다. 고려는 918년 태조 왕건이 건국한 이후, 수도를 개경에 두면서 ‘개경 중심의 해상 교역체계’를 구축했다. 개경 인근의 벽란도는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나루'라는 뜻처럼, 예성강 하구의 깊은 물길과 접..

고려시대 공음전 · 군인전 토지제도 변화의 모든 것

목차 고려시대의 토지 제도는 국가 운영과 사회 안정의 핵심 기반이었으며, 특히 공음전과 군인전 등의 제도적 변화를 통해 관리와 군인의 경제적 안정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썼습니다. 이 글에서는 고려시대 토지 제도의 변천 과정을 중심으로 공음전과 군인전의 성격과 변화, 그리고 이들 제도의 변천 과정을 통해 고려 사회의 정치적 변화와 경제 구조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시대 토지제도의 기본 개념고려는 당나라의 균전법을 본떠 토지 국유제를 기반으로 하였으며, 실질적인 토지 소유권보다 토지에서 징수할 수 있는 조세 수취권인 수조권을 중요시했습니다. 즉, 모든 토지는 국가의 소유로 관리되었고, 관리나 군인 등에게 지급되는 것은 토지 자체가 아닌 조세를 거둘 수 있는 권리인 수조권(稅租權), 즉 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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