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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요사스러운 이야기들

이모는 2025. 7. 25. 14:42

기묘한 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요사스러운 이야기들

조선왕조실록은 국가의 공식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정치‧경제적 사건만 담지 않았다. 실제로 실록에는 이해하기 힘든 괴이한 현상, 정체불명의 귀신, 변이된 동물, 불길한 징조에 대한 기록 등, 지금도 흥미로운 ‘요사스러운’ 일화가 다수 등장한다. 오늘은 실제 실록에 남은 대표적 기묘담과 그 이면의 인간 심리를 풀어본다.
 
 
 

반동 (班童)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흉배 (공공누리1)

 
 
 

1. 이두와 정창손의 집에 나타난 "요귀" 이야기

성종 17년(1486). 예조판서 유지는 임금 앞에서 이렇게 아뢴다.

“성 안에 요괴가 많습니다. 영의정 정창손의 집에는 귀신이 있어 능히 집 안에 기묘를 옮기고, 호조좌랑 이두의 집에도 여귀가 있어 매우 요사스럽습니다. 대낮에 모양을 나타내고 말하며 음식까지 먹는다고 하니, 청컨대 기양(祈禳)하게 하소서.”

  • 정창손의 집: 귀신이 출몰해 집안에서 그릇과 물건이 저절로 움직이고 옮겨지는 등, 오늘날 폴터가이스트 현상과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 이두의 집: 이 집 귀신은 대낮에 모습을 보이고 말을 할 뿐 아니라, 사람이 올려놓은 음식을 먹는 장면까지 포착된다. 정작 이두 본인은 귀신의 형상을 못 봤다고 하나, 하인들은 허리 아래만 보이고 남루한 치마를 두른 여귀를 보았다고 한다. 마치 하반신만 있는 귀신이 움직였다는 소문이었다.

이 기록 이후에도 임금은 끝내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을 지시했을 정도로 ‘서울에서 화제가 된 일’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이야기는 《용재총화》에도 실렸는데, 거기서는 이 귀신이 실제로는 죽은 고모의 혼령이라고 하였다. 이 귀신은 음식 달라고 조르고, 기분을 상하게 하면 행패를 부릴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된다. 조선의 공식 기록물임에도 귀신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 묘사, 그리고 이를 두고 논의하는 신하들의 모습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의 심리를 보여준다.
 
 

2. 대낮 궁을 뒤흔든 정체불명의 "백주괴물" 사건

중종 시대의 궁궐에는 기이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1530년엔 정현왕후가 머무르던 궁전에서 ‘백주괴물(白晝怪物)’이 대낮에 출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다시 한번 거처를 옮겼다. 백주괴물, 즉 대낮에 귀신 같은 이상한 것이 나타나 난리를 쳤기 때문이다.”

이 괴물은 임금이 자리를 뜨면 여기저기 창과 벽을 두드리고, 잡스러운 물건들이 희롱하는 듯한 표현까지 쓰였다. 당시 궁전이 권력 투쟁, 연산군의 망령, 각종 저주의 그림자로 흉흉했던 만큼, 실제로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포와 불안의 심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혹자는 연산군이 키우던 특이한 짐승이 남아있다가 사람들에게 목격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내린다. 실록은 이를 헛소문으로 일축하지 않고 비교적 담담하게 기록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3. 요계(妖鷄): 암탉이 수탉으로, 닭의 괴이한 변신

실록에는 유난히 ‘괴물로 변해버린 동물 이야기’가 자주 들어온다. 호랑이만큼이나 요상하게 기록된 동물이 바로 ‘닭’이다.

  • 1684년 충청남도 논산 : 머리에 뿔이 난 암탉이 발견됐다. 그 크기는 엄지손가락 정도로 단단하고 날카로웠으며, ‘수탉의 발톱 같다’고 기록되었다.
  • 암탉이 어느 날 수탉으로 변했다, 병아리 중에 발이 3개인 경우가 있었다 등 지금 봐도 비정상적인 사례가 등장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런 ‘요계’의 출현을 단순한 변이로 보지 않고, 사회적 불안이나 궁중 권력 변동의 징조로 해석했다. 《용천담적기》 같은 문헌에서는 “세상의 음양이 흐트러질 때 악변이 동물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식의 해설까지 덧붙인다. 실록에까지 남아있는 요계 이야기는, 단순한 미신이나 전설이 아닌 그 시대 사람들의 집단적 불안과 권력지향적 상상력을 반영한다.
 
 

4. 한밤의 궁에서 뛰노는 괴수와, 암살의 그림자

1532년 궁전을 수비하던 금군들은 한밤중에 말과 개의 중간쯤되는 괴물이 나타났다고 소동을 벌였다.

  • 정현왕후는 혹시 연산군의 망령이 복수를 위해 나타난 것인가 극도로 불안해했고, 권력다툼이 극심했던 조정 분위기와 맞물려 괴물 소문이 확산됐다.
  • 실제로 연산군은 궁에서 여우, 호랑이, 곰 등 특이한 동물들을 키웠던 유별난 임금이었다. 그가 쫓겨난 후에도 짐승들이 남아있었을 가능성, 종묘 화재 등으로 떠돌이 동물이 들어왔을 가능성 등 현실적 해석도 뒷받침된다.

괴물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실록에는 사람들의 공포와 심리, 위기의식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5. 요사스러운 짐승, 반동(班童) 이야기와 장산범 전설

조선 후기의 기록인 《어우야담》에는 호랑이와 닮은 ‘반동’이라는 동물이 나온다.

  • 반동: 사람 곁에서 자라나 인간의 언어까지 흉내 냈다는 기괴한 호랑이. 얘기가 퍼지면서 “권농아~” 하고 사람을 부르는 호랑이 이야기가 전해졌다.
  • 실제 조선왕조실록이나 고전 기록에서 ‘장산범’이란 명칭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조선 후기의 야담집 『어우야담』에서 ‘반동(班童)’이라는 수상한 호랑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반동은 사람의 말을 흉내 내거나, 인간 곁에 가까이와 교류했던 무서운 동물로 나옵니다. 연구자들은 2010년대 인터넷 괴담 ‘장산범’과 이 반동 설화의 구조적 유사성을 지적합니다. 즉, 전통 설화에서 “사람 목소리를 내는 위험한 호랑이형 요괴” 모티프가 이어진 셈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요사스러운 일화들은 단순히 미스테리라기보다 ‘공식 사료로 등재됐다는 점’과 ‘당시의 집단 심리’를 보여주는 휴먼 다큐먼트다. 지금의 도시괴담과 별 차이 없어 보여도, 그 시대엔 정치적 긴장, 사회적 불안, 그리고 집단 심리의 반영이었다. 미지의 존재에 관한 불안, 권력 패권의 그림자를 투영한 괴담, 그리고 동물에 투사된 혼란의 징조까지. 현대인으로서 실록 속 기이한 밤의 기록을 읽으며,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인간의 이야기”라는 데 공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