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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표적인 직업군 TOP 10 : 관리부터 예술인, 상인까지 그들의 이야기

이모는 2025. 7. 26. 13:20

조선시대는 사농공상(士農工商) 신분제에 따라 다양한 직업군과 그 생계 양식이 존재했습니다. 사회 구조상 양반이 가장 우대받았지만, 실제로 생활을 책임진 직업은 다양했습니다. 아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명 직업 10가지와 이들의 생계방식, 그리고 흥미로운 일화를 곁들여 소개하겠습니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직업군 TOP 10과 생계 방식

 

 

1. 문관(文官) - 관리의 삶과 경쟁

생계방식:

과거시험을 통해 선발되어 국가의 관리로 활동했습니다. 문관은 대개 양반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집안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한학, 유교 경전, 시문 등을 공부합니다. 집 안채에 별도의 서재(사랑채)를 두어 수년간 과거 시험을 준비하며, 가족은 물론 친족의 뒷바라지가 필수적이었습니다. 과거에 급제하면 중앙 또는 지방 관직에 임명되어 관청에서 정기적으로 녹봉(월급)과 쌀, 의복, 땔감 등을 받았습니다. 명망이 쌓이면 지방수령, 재상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죠. 출세에 성공한 후에는 토지 하사 등으로 가세가 크게 불어나기도 했습니다.

 

일화 - 서릿발 아래의 집념:
한 문관 지망생 박모 군은 가족의 기대 속에 밤을 새워 사서삼경·주역을 암송했습니다. 집안은 독서에 쓸 촛불 비용 때문에 가세가 기울었지만, 박 군은 꾸준히 정진하여 드디어 과거에 장원급제합니다. 고을 사람들은 그를 마을 어귀까지 나와 손수건을 흔들며 맞이했고, 부모는 자랑스러움에 눈시울을 붉혔다고 합니다.
→ 이처럼 출세는 자신뿐 아니라 가족·마을의 영광이었습니다.

 

 

2. 무관(武官) - 위기 속의 충과 명예

생계방식:
무관이 되기 위해 무과시험을 본 뒤 군사 또는 지역 방위를 담당했습니다. 무과에서는 말을 달리고, 활을 쏘고, 창검술을 겨뤘습니다. 합격한 이들은 군영이나 변방, 왕실 근위 등 다양한 역할에 임명되어 녹봉과 식량, 외에 군영 내 토지를 하사받아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또, 군무 중에는 자연재해나 전란 시 가족 부양을 위한 특별 급여와 보상도 있었습니다.

 

일화 - 임진왜란 용맹:
임진왜란 당시 무관 김모 장군은 적장 근처까지 돌격해 목숨 걸고 창을 던져 장수를 쓰러뜨렸습니다. 수비군의 사기가 급격히 오르며 전세를 뒤집었고, 김 장군은 왕에게 큰 포상을 받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의 가족은 왕실로부터 곡식과 전답을 하사받으며 넉넉히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3. 의원(醫員) - 생명을 지키는 실력과 인연

생계방식:
의원들은 내의원, 혜민서, 민간 한의원 등에서 근무했습니다. 관직의 의원은 안정적인 녹봉과 왕실 처방 등 지원을 받고, 민간 의원은 일반백성을 상대로 치료 의뢰나 방문 진료로 쌀·직물·현금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환자는 무료 진료하기도 했고, 실력이 소문나면 멀리서도 찾아올 정도로 신망이 높았습니다.

 

일화 - 어의의 기적 같은 침술:
궁중 의원 이모 선생은 해열 침술로 병풍(病風)에 걸린 왕을 살렸습니다. 치료 후 어의는 왕의 특별 하사와 함께 궁중에서 ‘천손(天手)’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동네나 지방에서도 명성을 얻게 돼 별도의 진료소를 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 역관(譯官) - 언어 능력과 경제적 기회

생계방식:
역관은 외국어(주로 중국어, 일본어, 몽골어)에 능통하여 조선과 명이나 청, 일본, 몽골 등 외국과의 교섭 및 통역을 담당했습니다. 공식 외교를 맡아 정규 급료 외에, 해외를 왕래하며 외국 상품 수입, 한방 정보, 밀무역 등으로 부수입도 컸고, 외국 문화를 배우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했습니다. 사절단 동행 때는 고급 비단, 의약품, 신기한 도구 등을 반입해 경제적으로 부유해질 수 있었습니다.

 

일화 - 신기한 물품으로 거부가 되다:
역관 최모 씨는 명나라 사행길에 유리잔과 향기로운 차를 가져와 중인 사회에서 부를 일궜는데, 이 물건들이 조선의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하며 ‘최 씨네 물건’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그 덕에 그의 가문은 역관 집안으로 크게 성장했다는 비화가 내려옵니다.

 

 

5. 상인(商人)·보부상(褓負商) - 전국을 누비는 도전 정신

생계방식:
상인은 관청의 필요물품을 공급하는 시전상인, 이동하며 생활필수품을 파는 보부상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보부상들은 장날을 이용해 장시(시장)를 찾아 전국을 누비며 생활필수품, 철물, 약초, 식량 등을 팔았습니다. 비오는 날, 강 추위, 야간에도 노점에서 혹은 짐을 머리에 이고 팔러 다녔죠. 도시의 시전상인과 달리 이들은 상인 조합 (보부상 단체) 을 만들어 유통을 독점·관리했고, 수익 일부를 조합 유지를 위해 재투자했습니다.

 

일화 - 생명을 건 강 건너기:
한 보부상 김씨는 이틀 만에 압록강을 건너 물품을 전해야 했습니다. 해빙기 물살에 물건 일부가 떠내려갔지만, 그는 새벽까지 다시 물건을 되찾아 모두 팔고, 마을 어른들이 감탄해 ‘강을 이긴 보부상’이라는 별명을 지었습니다.

 

 

6. 농민(農民) - 땀과 하늘을 의지한 한 해

생계방식:
농민은 대다수 백성으로, 자기 땅이 있으면 풍년에 풍요로웠지만, 지주 땅을 빌려 농사짓는 소작농이 대다수였습니다. 매년 곡식 일부와 세금을 지주와 관아에 바치며, 모내기·수확·장날 노동력 제공이 곧 생계였습니다. 흉년엔 가족까지 굶주렸고, 농지가 없는 경우 ‘품팔이’(일용 농업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풍년/흉년 여부에 따라 소득이 크게 좌우되었죠.

 

일화 - 삼일비 속의 소원:
홍수와 가뭄을 겪던 어느 마을 농민들은 ‘삼일비만 내리면 올벼밥을 먹는다’는 속담처럼, 장마가 끝난 후 모두 논에 모여 벼의 이삭 패는 광경에 감격해 서로 등을 두드리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이런 힘겨운 생계가 공동체 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7. 수공업자(공장/도편수/사기장) - 기술로 빚는 명가

생계방식:
관아에 소속된 관영 장인(공장)들은 관청에 소속되어 년중 국가 주문품(도자기, 금속, 목제품 등) 제작을 맡았고, 민간 장인들은 주문제작이나 장터 판매를 통해 생업을 이었습니다. 가업을 대물림하며, 우수 장인은 국가적 대공사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능력에 따라 토지, 곡식, 현금 등 다양한 보상이 주어졌고, 특출난 장인 가문은 지역에서 유명인을 배출했습니다.  도편수나 사기장 등 뛰어난 기술자는 국가적인 대공사에서도 중용됐습니다.

 

일화 - 왕실에 바쳐진 명품 백자:
한 사기장(도예가) 집안은 순백의 도자기를 만들어 궁궐에 납품하는 영광을 얻었고, 당시 임금이 백자를 보고 ‘이 땅 최고의 솜씨’라며 집안에 특별한 옷감과 쌀을 하사했습니다. 이 일로 가문이 크게 번창했다고 전해집니다.

 

 

8. 훈장(訓長)·서당교사 - 동심과 지혜를 나누는 매일

생계방식:
훈장은 서당이나 사설 교육기관에서 마을 아이들에게 글, 산술, 경전 등을 가르쳤습니다. 학비 대신 농산물(쌀, 고기, 채소)이나 의복 등 현물 사례를 받았습니다. 명성이 있으면 외지에서도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었고, 지역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대접받았습니다.

 

일화 - 더운 여름의 판소리 수업:
한 훈장은 무더운 여름, 책만 보는 아이들이 늘어지자 평소 연습하던 판소리를 들려주며 ‘공부도 쉬는 법과 노는 법을 알면 실력이 는다’고 조언했습니다. 이 훈장의 유쾌한 교육방식은 마을 안팎에 소문났고, 이후 그에게 배우러 가는 아이들이 더욱 늘었다고 전해집니다.

 

 

9. 역마살(驛使)·보장사(訊使) - 끝없는 길 위의 사명감

생계방식:
역마살들은 공문서, 기밀, 세금, 물품 등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전달하는 급행전달원이었습니다. 극한의 기후·지형을 극복하며, 신속함이 생명입니다. 일반보다는 높은 대가(급여, 식량, 숙식 제공)를 받으며, 위험 임무 완수 후 과거 시험 면제나 추가 보상이 있기도 했습니다. 위험하지만 빠른 이동으로 인한 가산점과 보상이 주어졌습니다. 하루 수십 리를 달려야 하는 극한 직업이었죠.

 

일화 - 부러진 다리와 임무 완수:
어느 역마살 이씨는 폭설에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지만, 지게에 서류를 올리고 기어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 장면을 본 지방 관리가 직접 왕에게 보고해 포상과 함께 ‘충성의 표상’으로 칭송받았습니다.

 

조선시대의 역마살과 보장사는 모두 문서·물자 전달과 관련된 역할이지만, 본질과 운영 방식, 직업적 위상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역마살(驛馬煞)

  • 정의:
    ‘역마살’은 원래 실제 직업명이라기보단, 전국적인 역참(驛站) 시스템에서 일하던 역졸, 역리 등 ‘역마를 타고 국가 공문, 군사 정보, 물자 등을 신속하게 전달한 공식 관청 인력’을 통칭합니다.
  • 소속:
    국가 행정망의 일부로, 중앙정부 혹은 지방 관아에 소속되어 역참(지방 거점역)을 순환하며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 운영:
    국가에서 말을 지급하고 숙식, 급여, 부가 보상을 제공했습니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 말(혹은 도보)로 공식문서를 빠르게 전달해야 했으므로, 신분과 책임이 비교적 높았습니다.
  • 특징:
    • 공적인 직업·공무원 성격
    • 국가 통신·행정망 유지의 핵심
    • 역참(휴게소, 숙소 등) 제공

보장사(報狀使)

  • 정의:
    보장사는 주로 하위 관아에서 직접 선정하여, 긴급하거나 별도 경로상의 공문서, 명령, 세금, 물품 등을 ‘인간 메신저’로 달려가 전달하던 역할입니다. 인편(人便) 혹은 사신(使臣)으로도 불렸습니다.
  • 소속:
    별도의 국가 조직 소속이기보다는, 각 관아 또는 마을이 사안을 맡겨 임시로 선발해 파견했습니다.
  • 운영:
    임무 단위(건당)로 급여, 식량, 숙식 등 사례를 받았으며, 업무강도·위험이 매우 컸으나 고정적 복지·체계는 미흡했습니다. 개인 또는 소수 단위로 혼자 전국을 돌며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 특징:
    • 임시성, 계약직 성격
    • 비교적 낮은 신분, 고위험·극한노동
    • 보상은 사례(보수·곡식) 위주

핵심 차이 한눈에 보기

구분 역마살 보장사
소속 국가/관아 소속 공식 인력 각 관아·마을 자체 임명, 임시 파견
업무 범위 국가 통신·행정망 유지, 정규 노선 주로 긴급 개별문, 비정규 임무
수단 말 지급, 역참(휴식소) 활용 도보 중심, 인편, 개인적 이동
신분/복지 공식직, 상대적으로 보장 체계 비교적 낮음, 보장 미흡
보상 정기 급여, 숙식, 특별 포상 임무별 보수, 식량, 작은 포상
 

결론적으로, 역마살은 “공공 네트워크의 공식 운송 담당자(공무원)”, 보장사는 “관아·개인 임시 메신저(계약직, 인편)”로서, ‘공식/비공식’, ‘정규직/임시직’이라는 차이가 뚜렷합니다.
두 직업 모두 조선시대 국가 행정과 소통의 혈맥을 이루었으나, 담당 영역과 근무환경, 사회적 지위 면에서 구분됩니다.

 

 

10. 멸화군·착호갑사 등 특수직 - 위험 속의 인정

생계방식:
멸화군은 화재감시와 진압, 착호갑사는 호랑이, 표범 등 맹수 퇴치, 기타 기후·동물 관련 임무, 매잡이 등 특수한 직업군이 있었습니다. 대개 관청 소속으로 매달 약정된 급여와 보너스를 받았고, 보호장구와 장비도 국가에서 지급받았습니다. 생명의 위험성을 감안해 특별한 날엔 보너스를 받거나 마을의 잔치를 대접받기도 했습니다. 희귀 직종이기에 특별 대우를 받았습니다.

 

일화 - 호랑이 퇴치와 삼일 잔치:
어느 착호갑사 박씨는 마을을 덮친 호랑이를 쫓아내 주민을 구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박씨 가문을 위해 3일 연속 잔치를 열었고, ‘호랑이의 사냥꾼’이라며 존경을 표했다고 합니다. 그의 용기는 마을 전설로 남게 됩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직업은 각기 다른 생존방식과 사회적 의미, 그리고 실제 인간사가 풍성하게 깃들어 있었습니다. 각자의 삶이 현재 우리의 직업관, 노동윤리, 사회복지 인식에도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외에도 문화예술 분야 직업들은 주로 회화, 음악, 연극, 문학, 그리고 종교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며 사회적 역할과 예술적 기여를 했습니다. 대표적인 문화예술 직업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1. 화원(畵員) – 궁중 화가
    조선시대 회화 미술의 중심인 도화서(예조 산하 관청)에서 근무하며 왕실과 국가 의례, 제례용 그림, 왕족과 공신, 사대부의 초상화 등을 그렸습니다. 화원들은 관속 직업화가로서 국가의 공식 기록과 예술 작업을 담당했고, 그림을 배우는 데 10년 이상 소요될 정도로 전문성이 높았습니다. 의궤화(국가의례 그림), 어진(왕의 초상화) 제작 등 왕실을 위한 중요한 작품이 화원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2. 예열가(禮樂歌) – 궁중 음악가
    궁중 의식과 연회에서 음악과 노래를 담당하는 전문 공연자로, 국가적 행사와 제례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악 문화를 이끌었습니다. 현재의 가수 개념과는 달리 주로 의식과 정치적 목적을 가진 예술 활동이었습니다.
  3. 기생 – 예능 공연자 겸 사회적 역할자
    기생은 노래, 춤, 시, 서예 등 다양한 예술을 교육받은 여성 예술가로, 상류층과 왕실의 연회나 잔치에서 공연하며 문화 예술을 제공했습니다. 기생들은 정치, 경제, 사회적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판소리 같은 대중 예술과도 연결 되었습니다.
  4. 연희·마당극 배우 및 극연(劇演) 출연자
    공공장소에서 공연되는 연극과 마당극 배우들이 있었으며, 사회적 이슈나 교훈을 주제로 한 작품을 통해 대중의 문화생활에 기여했습니다. 궁중에서도 연극과 음악 공연이 이루어졌습니다.
  5. 불화가 및 불교 예술가
    승려들이 절에서 불화(불상이나 사찰 벽화), 서예, 건축 등에 참여하며 불교 예술을 발전시켰습니다. 불교 예술은 조선시대 성리학이 국교화된 배경에서도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예술 활동이었습니다.
  6. 문인 및 서예가
    사대부와 문인들은 시와 서예를 창작하며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이들은 예술 활동을 통하여 조선시대 정신문화의 중심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렇듯 조선시대 문화예술 분야의 직업은 관청 소속 공식 예술가에서부터 민간 예술인, 승려, 기생, 극연 배우 등 다양한 층위와 역할에서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각 직업군은 조선 사회의 유교적 가치관과 문화적 요구를 반영하면서도 독특하고 풍부한 한국 전통 예술을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조선시대의 다양한 직업군을 통해 우리는 신분과 계층,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살아온 수많은 이들의 삶과 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문관과 무관은 국가를 이끌고 지키며 학문과 무예로 명예를 세웠고, 의원은 생명을 살리고 민심을 얻었습니다. 역관과 보부상, 그리고 문화예술인을 비롯한 다양한 직업인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경제와 사회, 문화를 움직였습니다. 단순한 생계유지 그 이상의 의미, 곧 소명감과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 이들의 삶을 관통합니다.

 

농민과 수공업자, 역마살·보장사처럼 고되고 힘든 노동마저 공동체의 지속과 가족의 행복이라는 보람으로 견뎠습니다. 훈장, 화원, 기생 등 예술·교육 분야 인물들은 한국의 정신과 미의식을 계승하고 발전시켰습니다. 각 직업에는 수많은 사연과 일화, 그리고 땀과 눈물, 나눔이 녹아 있었습니다.

 

조선의 직업사 속에는 오늘날 우리가 주목하는 노동, 복지, 사회적 책임, 나아가 문화적 자신감의 기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계급과 신분의 장벽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들의 삶에서 꾸준함과 도전, 배려와 창의력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를 움직이는 모든 직업인에게 조선시대 이 땅의 사람들은 전해 줍니다.


“직업 앞에 귀천은 없다. 뜻을 품고 최선을 다하면 그 삶이 곧 세상을 밝히는 빛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