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향을 떠나 낯선 바다에 몸을 맡겼네. 거친 파도와 싸우며,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섬을 향해 나의 운명을 걸었네."
고려와 조선 시대, 거대한 바다는 때로는 풍요를 안겨주는 삶의 터전이었지만, 때로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가는 공포의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태풍과 거친 풍랑은 예고 없이 뱃사람들을 집어삼켰고, 난파된 배에 몸을 의탁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미지의 땅으로 떠밀려 가야 했습니다. 이들이 겪은 혹독한 해상 표류 사건과 목숨을 건 생환 기록은 당시의 국제 관계와 문화 교류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입니다.
풍랑에 휩쓸린 운명, 그리고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고려와 조선은 모두 해안을 끼고 있어 해상 활동이 활발했습니다. 특히 조운선(漕運船)을 통해 세곡을 운반하거나, 상선을 이용해 무역을 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목선(木船)의 한계와 기상 예측 기술의 부재로 인해 배가 난파되는 사고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표류하게 된 사람들은 종종 일본이나 중국으로 떠밀려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고려 시대 표류민의 사례로는 **'표해록'**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고려 시대 문헌을 통해 고려인들이 일본에 표류하여 겪은 이야기가 일부 전해집니다. 이들은 낯선 풍습과 언어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다행히도 일본의 지방 관료나 주민들의 도움으로 본국으로 송환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려의 선진 문물과 기술이 일본에 전해지기도 했으며, 양국 간의 비공식적인 교류 통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표류 사건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조선후기 제주지역만 해도 1846년~1884년 사이 외국 표류 기록은 51건에 달합니다. 특히 대마도와 일본 서해안 지역으로 표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선 전체적으로는 일본에 표착한 사례가 약 1,120건(약 1만769명)에 이른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들의 생환 기록은 주로 '표해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데, 그중에서도 장한철의 『표해록』은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유명합니다.
장한철은 1807년 제주에서 서울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오키나와(당시 류큐 왕국)로 표류했습니다. 그는 1년 7개월 동안 류큐, 일본,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오는 기나긴 여정을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에는 낯선 이국의 풍경과 문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상세히 담겨 있어 오늘날의 우리가 당시의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의 기록은 **'조선시대 표류민'**의 경험을 담은 가장 중요한 사료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표류 및 생존 과정
- 표류의 시작 : 주로 바다에서 고기잡이, 상업, 사신 행렬 중 폭풍이나 해류를 만나 표류가 시작되었습니다. 표류민들은 배의 돛이나 노가 부러지고, 방향을 잡지 못한 채로 무작정 바다를 떠돌게 되었습니다.
- 생존 기록 : 《제주계록》, 《표해록》, 《표주록》 등에는 실제 표류가 시작된 순간부터, 생존을 위해 조난 상황을 극복한 사례가 등장합니다. 식량 부족, 날씨 악화, 부상, 질병과 같은 생존의 위협이 빈번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표류민 중에서는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기도 했으며, 극적으로 살아남은 이들이 기록을 남겼습니다.
“탐라 백성 20명이 표류해 나국에 들어갔다가 모두 죽음을 당하고, 오직 세 사람만이 살아남아 송나라에 의탁했다가 귀국했다.” – 『제주계록』 중.
표류민의 송환 : 외교의 중요한 쟁점
조선 표류민의 생환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과 표류지가 된 국가 간의 중요한 외교 문제로 발전했습니다. 조선은 표류민이 발생하면 그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송환을 요청하는 서신을 일본 막부나 중국에 보냈습니다. 일본 역시 조선의 표류민들을 보호하고 송환하는 것이 중요한 외교적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조선·일본 외교에서 표류민 송환은 양국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상징적인 행위였습니다. 일본은 표류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거처를 마련해 주었으며, 사비를 털어 배편을 마련해 조선으로 돌려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당시의 국제 관례와 인도주의적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반면, 표류민들의 송환을 둘러싸고 때로는 미묘한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표류민들이 돌아올 때 일본에서 제공한 물품의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하는 문제나, 송환 절차에 대한 이견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양국은 원만한 협의를 통해 표류민 송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표류민의 기록과 남긴 영향
표류민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제주계록, 최부의 표류기, 하멜 표류기 등이 대표적입니다. 최부는 풍랑으로 표류 끝에 중국에 도달해 그 여정을 기록했고, 네덜란드인 하멜 또한 무려 13년간 조선에 억류된 경험을 남겼습니다. 고려와 조선의 난파와 표류는 단순한 재난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낯선 문화와 마주하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며, 그들의 눈과 마음으로 보고 느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들의 기록은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 당시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와 국제 교류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거친 바다에 맞서 싸운 개인의 용기와 함께, 국경을 넘어선 인간적인 연대와 도움의 손길이 존재했음을 증명합니다. 고려·조선 해상 표류의 역사는 우리에게 잊혀진 영웅들의 이야기를 되새기게 하고, 과거의 교훈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국제 관계를 조명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고려와 조선의 표류민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고, 때로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문화 전달자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거친 바다가 낳은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에게 끈질긴 생명력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 표류민(漂流民) 이란?
해상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원래 의도한 지역이 아닌, 낯선 곳으로 떠밀려 간 사람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바다나 강 등 수상구역에서 풍랑, 조류, 기상 변화, 선박 사고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원래 목적지와는 전혀 다른 지점으로 떠밀려 가거나 조난당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표류민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 배를 타고 이동 중 강풍, 태풍, 해류 변화 등 자연적 재해로 인해 항로를 잃고 예상치 못한 지역에 도착한 사람
- 어업, 교역, 왕래, 외교, 여행 등 일반 해상 활동 중 조난을 당한 사람을 포함
- 단순 선박사고로 조난된 경우는 물론, 장기간 표류 끝에 타국 혹은 무인도, 낯선 해안에 도달한 사례까지 포괄
조선·고려 등 동아시아의 해양국가에서는 실제로 제주 어민, 사신, 상인 등이 일본, 중국, 류큐 등지에 표류한 사건이 기록됐으며, 표류민의 송환과 구조는 인도적·외교적 의무로 인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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