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중심, 동래. 현대의 번화한 터전이지만, 그 뿌리를 더듬으면 깊은 고대의 흔적들과 역사의 큰 논쟁들이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가야’와 ‘임나가라(임나일본부설)’를 둘러싼 논란, 그리고 이 속에서 부산 동래가 지닌 의미는 대한민국 고대사의 퍼즐을 푸는 실마리와도 같습니다.

1. 가야—분권과 다양성, 철의 왕국
가야는 한반도 남부, 주로 오늘날의 경상남·북도와 부산 일대에서 기원전 1세기부터 서기 6세기까지 존속한 여러 소국 연맹체입니다. 중앙 집권적이지 않고, 김해(金官)가야, 고령(大伽倻) 등 각 소국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띠며 느슨한 동맹을 이루었죠. 신라, 백제, 고구려라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철의 왕국’이라 불리는 강력한 철기 생산과 해상 교역으로 번영을 이뤘습니다.
동래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복천동 고분군 등 발굴된 고분에서는 가야 특유의 철제 무기, 토기, 금동장신구 등이 수천 점 출토되어, 부산 동래가 고대 가야 문화의 요충지였음을 증명합니다. 해안과 가까워 교통과 무역의 관문 노릇도 했죠.
일화: 동래 복천동 고분 발굴 현장
여름날, 부산의 한 대학 고고학과 학생들이 복천동 야산에서 발굴 조사에 열중할 때, 일본에서 온 연구진이 방문해 “임나의 유적을 찾으러 왔다”며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한국 연구진은 “이곳은 가야 소국이 있던 땅이며, 일본의 관부 흔적은 없다”고 단호하게 설명했죠. 현장의 학생들은 “우리 역사의 진실은 우리가 밝혀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새롭게 다졌다 합니다.
2. 동래와 가야의 연결고리
부산 동래의 지명과 행정 변천사를 들여다보면, 이곳이 명백히 가야계 소국의 영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한 시대 ‘거칠산국’이란 가야 소국이 이곳을 지배했고, 이후 신라에 편입되며 행정구역명이 바뀌었지만, 물길 따라 펼쳐진 무역로와 철 생산망, 고분 문화 등에는 분명 가야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복천동 고분군은 가야계 목곽묘(나무로 짜서 만든 무덤)에서 신라계 석곽묘(돌무지 무덤)로 바뀌는 변화를 뚜렷이 보여줍니다. 이는 동래가 가야에서 신라로 정치·문화적 전환을 직접 경험한 ‘역사의 접점’임을 뜻합니다. 고분에서 출토되는 일본계 토기, 외래 유물 등은 동래가 한반도와 일본을 잇는 교류의 현장이었음을 입증하죠.
또한 동래는 임진왜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도시 경관과 행정적 위상이 변했으나, 한때 부산의 중심지로서 교육, 군사, 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지역민들의 삶과 애환이 켜켜이 쌓인 곳입니다. 특히 동래향교, 동래읍성 등에는 여전히 당시 역사와 정신이 남아 있습니다.
3. 가야 쇠퇴와 임나가라 논쟁
가야의 쇠퇴 원인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신라·백제·고구려로부터의 외압, 철 생산과 무역로의 상실, 중앙집권체제 미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한편, 일본에서 제기한 임나일본부설—즉 일본 왕정이 4~6세기 한반도 남부 가야를 군사·정치적으로 직접 통치했다는 주장은 한일 간 대표적인 역사 논쟁거리입니다.
이 설은 일본서기 등 문헌에서 임나에 대한 기록, 일부 왜계 유물 등을 근거로 하지만, 실제 고고학적 증거는 부족하고, 대다수 유물들은 오히려 가야 자체의 독립성과 고유문화를 강하게 보여줍니다. 다수 국내외 연구자들은 임나=가야설이 일제강점기 조선 침탈 논리로 조작·왜곡된 ‘식민사학’임을 지적합니다.
일화: 동래장터의 민심
조선 말기 일제 강점기, 동래장터에 군사적 압박이 심해지자 한 상인이 “동래장은 백성의 삶터”라며 일경에 맞서 장터 철거를 막아섭니다. 결국 일부 장터가 지켜졌고, 이 사건은 동래 민심의 상징이자 역사의식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4. 임나와 가야, 그 실체의 퍼즐
임나와 가야의 관계는 문헌과 유물이 혼재하는 ‘해석의 역사’입니다. 삼국사기, 일본서기, 광개토대왕 비문 등 다양한 기록에 임나·가야 지명이 등장하지만, 실제 일본의 장기 지배를 입증하는 실증적 유물은 부산, 경남 고분 어디서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반도계 유물이 일본 열도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죠.
그렇기에 오늘날 역사가들은 임나—가야는 군사적 충돌과 활발한 교류를 가진 ‘이웃’에 가깝고, 임나일본부설의 실체는 교역·문화교류기구 혹은 일시적인 영향력에 불과했다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5. 오늘날 동래에서 걷는 가야의 흔적
고대 가야는 부산과 동래의 지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풍부한 유물과 고분, 전승되는 이야기, 역동적인 문화의 흔적이 지금도 지역 여기저기에 스며 있습니다. 부산 동래, 복천동 고분군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단순한 도시공원이 아닌 고대 가야인의 삶, 치열한 생존과 교류, 그리고 논쟁 속에서 지켜온 역사정신이 오롯이 숨 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임나가라 논쟁은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며, 무분별한 역사 왜곡을 경계하고 올바른 연구와 해석의 필요성을 일깨워줍니다.
가야와 임나, 그리고 부산 동래를 둘러싼 일련의 역사와 논쟁은 지금도 “과거로부터 곧장 미래로” 뻗어나가는 부산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지만, 그 원형은 사라지지 않고 동래의 거리, 무덤, 사람들 사이에 살아 있다는 것 - 이것이 우리 모두가 발 딛는 오늘의 부산, 동래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깨달음 아닐까요?
** 복천박물관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s://museum.busan.go.kr/bokcheon/index
부산광역시 복천박물관
부산광역시 복천박물관 홈페이지입니다.
museum.busan.go.kr
*** 복천박물관 관람정보
복천박물관은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설 전시실 2곳과 야외전시관을 통해 신석기시대~삼국시대 무덤양식·부장품, 가야특유의 철기·토기·장신구, 그리고 복천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 12,000여 점을 종합적으로 선보입니다. 야외전시관에는 무덤 내부 발굴 당시 그대로를 재현해 당대 매장 풍습을 간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교육 프로그램(성인 강좌, 어린이 체험교실), 시민 대상 전시해설도 정기적으로 운영됩니다.
- 관람시간 : 09:00~18:00(입장 마감 17:00)
- 휴관 : 매주 월요일, 1월 1일
- 입장료 : 무료
- 주차 : 소형 50대, 대형 10대 가능
- 주소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3
- 대표전화 : 051-554-4263
- 교통 : 동래시장·동래전화국 방면 버스 하차 후 도보 15분 또는 지하철 1호선 명륜역 인근
- 전시 특징
- 제1전시실: 선사~삼국시대 무덤 양식·부장품, 복천동 고분군 발굴·성과 중심 전시
- 제2전시실: 가야·신라 유물 및 부산~인접 지역 출토 유물 비교 전시
- 야외전시관: 건식·석곽무덤 등 발굴 현장 재현
- 특별기획전 연 1회 이상 개최,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 다양
** 동래읍성 역사축제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dongnae.go.kr/festival/index.dongnae
동래읍성역사축제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동래읍성역사축제 소개 물밀 듯이 밀려오는 왜군에 맞서 나라를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던진 동래부사 송상현과 동래 읍성민의 치열한 전투를 그린 동래성전투 실경 뮤지컬, 전국 유일의 동래
www.dongnae.go.kr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