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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성의 신문물과 유행 : 근대의 빛과 그림자

이모는 2025. 8. 13. 18:22

1920년대, 경성(현재의 서울)은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 있었다. 일제강점기(1910~1945)라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한편으론 경성을 중심으로 전례 없는 신문물과 유행이 쏟아진 근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 '모던(Modern)'이라는 단어가 경성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며 일본,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물품과 문화, 그리고 변화하는 도시의 풍경은 조선인의 일상과 심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일제강점기 경성의 신문물과 유행 : 근대의 빛과 그림자

 

 

경성, 근대 도시의 풍경을 갖추다

일제는 식민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경성에 근대적인 도시 인프라를 구축했다. 전차, 인력거, 백화점, 카페와 바, 영화관, 서양식 사진관, 양장점, 호텔 등 신문물이 도입되어 새로운 도시 문화가 형성되었다. 전차가 오가고, 근대식 도로와 건물들이 세워지며 경성은 ‘도시다운 도시’로 빠르게 변모했다. 역사적 조사에 따르면 경성은 일제의 식민지 정책 속에서도 다양한 모던(Modern) 라이프스타일이 스며들었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 전차와 버스 : 1899년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운행을 시작한 전차는 경성 시민들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창경원(현재 창경궁)을 비롯한 명소들을 잇는 전차 노선은 사람들의 활동 반경을 넓혀주었고, 버스는 전차의 보조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 백화점 : 일제강점기 경성에는 '미쓰코시 백화점', '화신 백화점' 등 근대적인 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백화점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을 넘어, 최신 유행을 선보이고, 서구 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이었다. 당시 경성 최고의 핫플레이스였던 백화점은 쇼핑을 하는 것만으로도 '모던'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 극장과 카페 : 단성사, 우미관 등의 극장은 영화의 낭만을 선사했고,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서구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다방'이라 불리던 카페들은 경성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일본식, 서양식 커피하우스와 바에서 시인, 소설가들은 작품을 논했고, 연인들은 새로운 문화적 체험을 공유했다.
  • 사진관과 신여성 : 유리천장 조명 아래, 남성뿐 아니라 여성 사진사가 등장해 신여성 문화의 확산을 이끌었다. 여성 고객을 위한 서비스가 보편화됐고, 이 시기 여성들의 개성과 사회 진출 욕구도 커졌다.

 

모던걸과 모던보이, 경성의 새로운 얼굴

새로운 시대의 물결은 '모던걸'과 '모던보이'라는 신인류를 탄생시켰다. 이들은 서구적인 패션과 생활양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경성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 모던걸 패션 : 서구식 양장(레이스 드레스)인 원피스와 스커트는 모던걸의 상징이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는 '단발'은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 과감한 시도였고, 클러치백, 스타킹, 하이힐 등 서양 패션 아이템들은 모던걸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들은 단순히 옷을 입는 것을 넘어,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신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 모던보이 패션 : 모던보이들은 주로 신사복(쓰리피스 정장)과 중절모, 지팡이 등을 활용해 멋을 냈다. 깔끔한 양복 차림은 지식인과 상류층 남성들의 상징이었고, 넥타이와 코트, 구두는 서구식 신사 복장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들은 단순히 옷을 잘 입는 것을 넘어, 잡지나 문학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했다.

 

대중문화의 황금기, 경성 스캔들

일제강점기 경성은 대중문화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영화, 연극,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미디어들이 등장하며 대중의 관심과 소비를 이끌었다.

  • 신문과 잡지 :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신문들은 시사뿐 아니라 소설, 시 등 문학 작품을 연재하며 대중의 문학적 소양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개벽>, <신여성> 같은 잡지들은 최신 유행 정보와 시대를 앞서가는 사상을 소개하며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 축음기와 라디오 : 축음기의 등장과 음반사, 레코드, 라디오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집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경성방송국'에서 송출하는 라디오 방송은 새로운 문화 콘텐츠였고, 사람들은 라디오를 통해 시대의 흐름과 유행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었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축음기를 통해 전국적으로 히트한 대표적인 노래이며, 1930년대엔 라디오 수신기 보급량이 14만대를 넘어섰다.

 

생활 문화와 사회 변화

근대적 공공시설(공원, 도서관, 체육관, 수영장)이 들어서면서 여가문화도 달라졌습니다. 한강에서는 여름철 수영과 휴양을, 오락장·경마장·영화관에서는 다양한 여가활동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선술집, 음식점 등 외식 문화도 서구식으로 변모했습니다.

 

 

여학생과 신여성의 사회 참여

이 시기 경성의 젊은 여성들은 민족운동, 학생운동, 동맹휴학에 적극 나선 ‘신여성’의 대표격이었습니다. 여학생들은 근대 교육을 받으며 기숙사 생활, 음악·체육 활동 등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삶에 도전했습니다.

 

 

시대의 낭만과 비극이 공존했던 경성

분명 일제강점기 경성 사람들의 신문물과 유행은 경성을 새로운 근대 도시로 변모시키며 한편으로는 시대의 암울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낭만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일제의 식민 통치라는 거대한 비극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식민지라는 특수성 속에서 이 모든 변화의 이면에는 민족 차별과 억압, 문화 왜곡이 자리했으며, 경성의 화려한 밤거리 뒤에는 억압받는 민족의 슬픔과 독립을 향한 염원이 숨어 있었다.

 

그  시절의 이야기는, 낭만과 비극이 교차했던 한 시대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경성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는 것도, 이 시대가 지닌 독특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를 단지 '근대화의 시작' 혹은 '암흑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문화적 현상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경성시대’ 뉴트로 유행이나 콘텐츠의 인기와 더불어, 당시 신문물에 대한 이해는 이 시기를 미화하지 않고, 근대성과 식민지성의 이중성을 함께 성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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