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정말 모두 일찍 죽었을까?
오늘날 대한민국의 평균 수명은 80세를 넘어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불과 100여 년 전, 조선시대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전국민의 평균 수명은 30~35세 내외로 추정되며, 흔히 말하는 ‘고희’(70세)까지 장수하는 일은 지극히 드문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국왕이나 양반 등 사회적 상류층도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실이었죠.
1. 조선시대 평균 수명의 실태
- 국왕 27명의 실제 사망 나이를 분석하면 평균 46.1세에 불과합니다. 단종 등 요절한 임금을 제외해도 47.3세밖에 되지 않습니다.
- 백성들의 평균 수명은 이보다 더 짧아 30세를 넘기지 못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평균수명 30세’는 결코 어른 대부분이 30세에 죽는다는 뜻이 아니라, "갓난아이 때 죽는 이가 극히 많아, 통계적으로 평균값이 내려간 결과"라는 의미가 크다고 보여집니다.
- ‘고희’(70세)까지 생존한 국왕은 태조 이성계와 영조 단 둘 뿐이었으며, 60세 이상 산 왕은 전체의 20%도 채 되지 않습니다.
2. 극심했던 유아·영아 사망률
오늘날 출생아 1,000명 중 생후 5세 이내에 사망하는 아이는 4명 정도(2020년 기준)로 매우 낮지만, 조선시대에는 전혀 달랐습니다.
- 출생아 3명 중 1명은 만 4세까지, 4명 중 1명은 돌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어린 나이에 사망하는 인구 비중이 전체의 25~33%에 달해, 이는 모든 연령층의 기대수명을 크게 낮추었습니다.
- 양반 여성 1명이 평균 5명 이상 자식을 낳았지만, 대를 이을 수 있는 남자아이는 1.25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유아 사망이 보편적이었습니다.
- 왕가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조선 최장수 임금인 영조 역시 유아 사망의 현실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영조가 두 아내에게서 낳은 14명 중 5명이 네 살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당시 왕실조차 질병과 감염, 영양 부족 등으로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던 실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왜 이렇게 수명이 짧고, 유아 사망이 흔했을까?
1. 의학의 한계와 열악한 위생 환경
- 당시에는 의학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간단한 질병도 치명적이었으며, 감염병·전염병에 대한 효과적 대응책이 없었습니다(패혈증, 종기 등).
- 출산 및 신생아 관리에서도 비위생적이었습니다. 출산 후 탯줄을 소독 없이 절단해 신생아 파상풍 등 감염으로 인한 사망이 잦았습니다.
- 목욕이나 청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감염병이 빈번했으며, 특히 왕실에서도 개인 위생과 관련한 전통적 금기(온수 목욕을 삼가고, 옷을 자주 벗지 않는 등) 때문에 감염에 더욱 취약했습니다.
2. 영양 불균형과 굶주림
- 식생활이 풍족하지 못했으며, 특별한 양반이나 왕족이 아닌 이상 균형 있는 식단이나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기 어려웠습니다.
- 반복되는 흉년과 기근은 많은 사람들을 굶주림에 빠뜨렸고, 기아와 영양실조는 아이들과 산모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3. 반복되는 출산과 산모의 위험
- 여성들은 건강한 아이를 얻을 때까지 수차례 임신·출산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산모의 산후 건강 관리가 미흡하여 조기에 사망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 당시 산모의 사망률은 7%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 해산 중 모자(母子) 모두 사망한 미라의 발견 : 충청북도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미라에서는 당시 산모의 위험한 현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미라는 아기를 낳기 직전, 자궁 파열과 대량 출혈로 산모와 태아가 모두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사례임이 밝혀졌습니다. 당시 출산의 위험성은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치명적이었으며, 의료 환경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입니다.
- 양반가문 여성 ‘최씨’의 비극 : 17세기 양반 이덕수의 부인 최씨는 아이를 낳다가 산모와 아이 모두를 잃었습니다. “해산하다가 아이가 죽었다. 슬퍼하여 병이 점점 위급해졌고 그 해 10월 8일, 마침내 20세의 나이로 죽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당시 양반가 여성이라 해도 산모 및 신생아 사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 일화입니다.
4. 감염병과 각종 전염성 질환
- 홍역, 천연두, 파상풍, 설사 등 아동기에 많이 걸리는 질병이 큰 위협이었습니다.
- 전염병이 창궐하면 마을 단위로 어린이들이 몰살당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5. 기타 사회·환경적 요인
- 피임이나 산아 제한 기술의 부재, 성에 대한 금기와 재혼 금지 등 문화·사회적 요인도 출산율과 영유아 사망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 약자의 소외, 농사 노동력으로서 아동의 조기 투입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선 사회의 대응과 그 ‘간절함’
이러한 극악한 현실 속에서도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은 남달랐습니다. 높은 유아 사망률은 조선 사회만의 특별한 풍속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들의 탄생을 비는 ‘남근석(男根石) 쓰다듬기’나, 다른 집 장남의 배냇저고리를 몰래 가져오는 풍습, 첫 돌을 특별히 챙기는 ‘돌잡이’ 등이 자녀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가족과 사회의 마음이 일화와 풍습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왕실에서도 국가적 차원에서 의료 혜택을 최대한 제공하려 노력했으나, 전체적인 의료 수준과 위생의 벽을 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짧은 생’이 남긴 교훈
조선시대 극악했던 평균 수명과 유아 사망률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장수와 건강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실례입니다.
보다 나은 보건의료 환경과 사회복지 시스템, 그리고 위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점을 조선시대의 삶이 분명하게 증명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건강과 복지정책의 가치에 감사한 마음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