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존재했던 연쇄살인
현대사에서 연쇄살인범은 대중의 이목을 끄는 극단적인 범죄자로 인식되지만, 참혹한 연쇄살인 사건은 시대를 불문하고 꾸준히 발생해 왔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사회적 규범 아래 감춰졌던 연속 살인은 엄연히 존재했으며, 의외로 치밀하고 잔혹한 범죄 수법, 다양한 배경과 동기를 지닌 범죄자들이 기록 속에 남아 있습니다.
조선의 연쇄살인, 사회와 법의 틈에서 벌어지다
1. 영조대 노비 영만이 — 집단 독살의 비극
사건 개요
1734년(영조 10년), 경기도 광주에서 일어난 노비 영만이의 집단 살인 사건은 조선시대에도 ‘연쇄살인’이 사회적 문제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입니다. ‘김대뢰의 노비 영만이’는 주인과 그 집안 노비 30여 명을 저주(咀呪)와 독살로 살해하였다고 전해지며, 살인 범행의 반복성과 규모 면에서 현대의 연쇄살인에도 뒤지지 않는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는 평소 억울함과 분노를 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반복적으로 음식을 통해 독을 타거나 저주를 이용해 대상을 제거했습니다. 이에 복수한 또 다른 노비가 영만이를 죽이고 자수하기까지 하여, 참혹한 연속 살인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은 신분제 사회의 모순, 하층민의 극단적 분노와 저항이 뒤섞인 복합적 비극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특징
- 범행 수법: 독살과 저주(咀呪)의 결합.
- 피해 범위: 주인 가문과 동료 노비 포함 최소 30명.
- 사회적 함의: 신분제 사회의 억압, 피지배층의 극단적 저항이 연쇄살인의 동기가 됨.
독살 및 저주(咀呪)
- 대표 사례: 영조 때 노비 영만이 사건은 반복적인 독살 및 저주를 통해 30여 명의 주인과 동료 노비를 살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특징: 직접적인 폭력 대신 비밀스럽게 독을 이용해 살인을 저질렀고, 저주나 미신을 빙자하여 범행을 숨기는 방식이 두드러졌습니다.
2. 함경도 김명익 집안 — 가족과 하인, 모두 피해자가 되다
사건 개요
조선시대 연쇄살인은 종종 가족, 집안, 노비 간의 분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683년(숙종 9년) 함경도 경성에서는 김명익의 집안에서 가족, 친척, 노비들이 서로를 칼로 찔러 죽이는 대규모 집단 살인이 발생합니다. 김명익 자신은 자신의 어머니, 아들, 친척, 심지어 노비까지 살해했으며, 그 범행 과정에는 직접 명령하거나, 가족이 서로를 죽이는 형태가 포함됐습니다. 이처럼 반복적 살해와 참혹한 범행은 사회윤리, 가족제도의 붕괴와 연결되어 있었고, ‘반인륜적’, ‘반사회적’ 범죄로 강한 형벌이 뒤따랐습니다. 한 예로, 살인에 참가했던 가족과 노비들은 국문과 능지처참에 처해졌으며, 신분 차이에 따라 처벌 수위가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특징
- 범행 수법: 칼, 집단 광기, 명령에 의한 타살.
- 피해자: 가족, 친척, 노비 등 최소 10명.
- 동기: 집안 내 정신 착란, 가부장적 명령 체계, 집단 분쟁의 비극적 결과.
3. 평산 박소사 사건 — 가부장제와 명예 살인의 집중
사건 개요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에서는 약자—특히 여성과 노비—들이 보호받지 못한 채 희생되는 사건이 적지 않았습니다. 음모, 명예, 신분 질서의 이름 아래 자행된 ‘명예살인’ 등도 실질적 연쇄살인의 형태였습니다. 과부 며느리를 자루에 넣어 강에 던진 사례, 주인의 명령에 따라 하인을 반복적으로 살해한 사례는 작은 공동체 내부에서 촘촘히 얽힌 사회적 압력과 억울한 희생자를 양산하였습니다. 처벌은 대개 피해자의 신분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하층민의 목숨은 너무나 쉽게 희생될 수 있었습니다. 정조 때 평산 지역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박소사라는 젊은 여성이 갑자기 죽은 것으로 시작됩니다. 초기에는 자살로 위장되었으나, 시어머니와 남편의 시신 매장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이어집니다. 수년간의 검안과 암행어사 파견 끝에, 근친상간을 덮기 위해 집단적으로 며느리를 죽음으로 내몬 명예 살인임이 밝혀졌습니다.
특징
- 범행 수법: 자살 위장, 증거 인멸, 집단 협박.
- 피해자: 상속자 여성(며느리), 사회적 약자.
- 사회적 함의: 가족 명예, 비밀 유지, 성도덕을 둘러싼 구조적 폭력.
4. 안주 임부개 사건 — 존속살인의 충격
사건 개요
세종 즉위년(1418년), 안주의 백성 임부개가 어머니와 말다툼 끝에 어머니 목을 매어 살해하는 존속살인이 일어났습니다. 이후의 조사에서, 가족 사이의 갈등이 반복된 끝에 벌어진 극단적 저항임이 드러났습니다.
특징
- 범행 수법: 직접적인 목 졸라 살해, 은폐 시도.
- 피해자: 모친.
- 동기: 경제적·심리적 갈등, 가족 내 권력 구조의 왜곡.
5. 실구지 형제 사건 — 성폭력과 집단 패륜
사건 개요
중종 연간, 실구지 형제는 자신의 아우와 결탁해 여동생 내은이를 성폭행하고, 저항하는 내은이의 동생들마저 집단적으로 폭행합니다. 이후 발생한 살인까지 포함해 가족 내 성폭력과 연쇄범죄의 표본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징
- 범행 수법: 협박, 감금, 연쇄 성폭력 및 살인.
- 피해자: 본가 여성(여동생, 조카 등).
- 결말: 범인 형제 및 공범 모두 능지처참, 집안 처벌 시행.
조선의 수사와 법의 대응, 그리고 한계
조선에서는 ‘무원록’이라는 사건 수사 지침서가 존재했으며, 시체 검안과 원인 규명 등 비교적 과학적인 수사 방식도 발전했습니다. 관청과 암행어사는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신분과 권력의 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연쇄살인의 기록은 당시 사회 시스템이 갖는 한계와, 피해자 보호의 미흡함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수사 시스템의 특징과 한계
- 무원록 등 지침서의 활용: 조선에서는 ‘무원록’ 같은 중국식 범죄 수사 지침서가 널리 사용됐으며, 현장 검안, 시체 부검, 자백문 작성 같은 비교적 체계적인 수사 기법이 도입되었습니다.
- 현장 검안 및 과학적 수사: 관원과 의관, 서리 등이 참여하여 사망 원인을 밝히는 절차(검시)가 정립됐지만, 현대적 과학 수사에는 한계가 명확히 존재했습니다.
- 암행어사‧관찰사 파견: 지방 관리의 부패 또는 권력 남용, 억울한 사망이 의심되면 암행어사 또는 상위 기관에서 직접 재조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수사의 함정과 신분의 영향
- 신분이 낮은 노비, 여성, 하층민의 억울한 죽음은 상세히 수사되지 않고 은폐되거나, 매우 경미하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가해자가 상류층 혹은 권력과 가까울수록 수사가 지연되거나, 힘없는 피해자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연쇄살인이 던지는 교훈
조선시대의 연쇄살인범 기록들은 단순히 범죄의 역사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제도의 민낯,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깊은 경고이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충격적 사건의 이면에는 억압된 사회적 약자, 신분 차별, 가부장제, 권력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 기록들을 되돌아봄으로써, 우리는 ‘안전한 사회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됩니다. 약자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했던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 지금 우리의 공동체는 더 나은 정의 실현과 피해자 보호에 힘써야 함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다만 흔적을 남길 뿐.”
조선시대 살인사건 기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