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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학 수사’의 대가 : 정약용의 범죄 기록과 추리

이모는 2025. 7. 23. 14:02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과 과학 수사 : 억울한 누명을 벗긴 실학자의 수사 기록과 추리

조선 시대는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 수사 기법이 없던 시기였지만, 당시에도 억울한 이들이 누명을 쓰지 않도록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다방면에 걸친 천재였던 정약용(1762~1836)은 단순한 학자가 아닌, 탁월한 법률가이자 과학 수사의 대가로 평가받는다. 그가 남긴 법률 지침서인 『흠흠신서(欽欽新書)』는 한국 법제사상 최초의 율학 연구서이자 실무 수사지침서로, 조선 시대 형법뿐 아니라 과학적 검증과 객관적 증거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약용은 당시 대부분이 감정에 의존하거나 권력자의 입김에 흔들리던 형사 사건 심리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치밀한 과학적 접근법을 도입하여 억울한 이들의 누명을 벗겨줬다. 특히 그는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모르고 털끝만한 일도 세밀히 분석하지 않으면 살려야 하는 사람을 죽이고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하여 인권 보호의 근간이 되는 정밀 수사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조선 시대 ‘과학 수사’의 대가, 정약용의 범죄 기록과 추리

 
 

1. 정약용과 ‘흠흠신서’: 조선시대 과학 수사의 결정판

정약용의 『흠흠신서』는 살인 사건을 포함한 각종 형사사건의 사건 조사에서 법률적 절차를 정립하는 한편, 시체 검안, 독살 여부 확인, 현장 증거 수집 등 과학적 수사기법까지 상세히 다룬 실무 지침서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수사 기법이 이미 상당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며, 신중하고 꼼꼼한 증거 검증이 열악한 여론과 억울한 누명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흠흠신서』는 법률과 형법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법의학적 식견을 드러내며, 정약용은 이를 통해 ‘실체적 진실’ 발견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법률과 증언, 증거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수사를 다시 하여 오판을 구제하는 절차를 강조했다.
 

  • 시신 검안의 중요성: 사망 원인과 범행 정황 파악을 위해 피부부터 내장, 상처까지 상세히 검시
  • 증거와 진술의 종합적 분석: 유족 및 증인의 진술, 시체에 대한 검시 결과, 참고인의 진술이 일치해야 신뢰 인정
  • 과학적 실증 도입: 독살 여부 판단 등을 위해 은 비녀로 독극물을 판별하는 등 혁신적 기법 사용
  • 법률과 판례 비교 연구: 국내외 판례를 조사해 사건 해결의 객관적 기준을 세움

이처럼 정양용은 법학과 법의학을 아우르는 최초의 과학적 수사 지침을 조선에 뿌리내리게 했다.
 
 
 

2. 대표적 과학 수사 사례: 함봉련 사건

1799년 형조참의였던 정약용은 정조의 명을 받고 전국의 형사 사건을 재심하던 중 ‘함봉련 사건’을 맡았다. 이 사건은 평창에서 환곡 독촉을 하던 나졸 모갑이 김태명과 송아지 탈취 문제로 싸움을 벌인 후 사망에 이르렀는데, 초기 수사 과정에서 증언과 증거가 엇갈려 함봉련이 주범으로 오판되어 감옥에 갇혔다.
 
정약용은 초기 수사를 원점에서 철저히 다시 검토했다. 그는 유족 진술, 시체 검안, 증인 증언 세 가지가 모두 일치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함봉련에게 씌워진 누명을 과학적 증거와 논리로 파헤쳤다. 특히 시체의 상처 위치와 증언 간 모순을 밝혀내면서 김태명이 나졸의 가슴을 무릎으로 짓찧은 진범임을 밝혀내고 함봉련을 즉시 석방시켰다. 부당한 서류와 문서까지 모두 태워 없애도록 지시해 억울한 피해자가 재차 고통받지 않도록 했다.
 

  • 사건 개요: 나졸 모갑이 환곡을 독촉하러 갔다가 살해됨. 당시 현장 증거가 부족해 머슴 함봉련이 주범으로 지목되어 처벌받음.
  • 정약용의 재조사:
    • 유족의 진술, 시체 검증서, 공정한 참고인 증언 등을 꼼꼼히 검토
    • 시신의 상처와 사망 원인을 바탕으로 실제 범인은 김태명임을 밝혀냄
    • 억울하게 누명을 쓴 함봉련은 무죄로 석방
  • 결과: 정조 임금도 정약용의 조사 결과를 신뢰해 사건 문서를 모두 폐기하고, 함봉련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이 사건은 정약용의 철저한 현장 조사, 정확한 검시, 객관적 증거 분석, 증언 검증이 어떻게 오판을 방지하고 진실을 규명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3. 정약용의 추리와 과학적 수사 철학

정약용은 범죄 수사에서 감정과 편견을 배제하고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논리적 추리를 펼쳤다. 그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으면 피의자나 이해당사자의 진술을 증거로 볼 수 없다’는 신념을 가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려 했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다음 점들을 강조했다.

  • 명확한 초동 수사 및 현장 확인: 사건 발생 직후부터 꼼꼼하게 증거를 수집해 사건의 윤곽을 명확히 해야 한다.
  • 정확한 시체검안과 독살 여부 판별: 시신 상태를 과학적으로 판단하여 진짜 사인을 파악한다.
  • 증언의 신뢰성 검증: 증인 간 진술을 교차 검증하여 허위 진술을 가려낸다.
  • 재심과 오판 방지: 법과 인권의 기본 정신을 살려 억울한 누명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그는 형벌 집행과 관련해서도 ‘살려야 할 사람은 살리고, 벌할 사람은 반드시 벌여야 한다’며 엄정한 법치주의와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 수사 태도를 요청했다.
 
 
 

4. 정약용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정약용은 조선 후기 왕조 사회에서 많은 어려움과 탄압을 겪으면서도 학문과 실무에 정진했던 인물이다. 천주교 관련 사건으로 유배를 가는 등 정치적 곤경 속에서도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행정 및 정책서적과 함께 과학수사서인 『흠흠신서』까지 남겨 조선 사회 개혁과 법질서 확립에 기여했다.
그의 활동은 당시 마구잡이 식 처벌과 부당한 억울함을 과학과 합리적 법치주의로 타파하려 한 실학적 정신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조선의 과학 수사 대가이자 인권 수호자

정약용은 조선 시대 과학 수사의 선구자로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데 뛰어난 추리력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는 법’의 가치를 몸소 실천했다. 그의 『흠흠신서』는 법의학, 형법, 형사소송법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고전이자, 현대적 과학 수사의 모태라 할 수 있다.
정약용의 수사는 단순한 범죄 해결을 넘어서 당시 사회 전반에 깔려 있던 부조리와 인권 침해를 바로잡는 역할을 했다. 그의 신중하고도 철저한 수사 철학은 오늘날에도 법과 정의, 인권 보장의 근본 정신으로 이어져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유산이다.
정약용의 삶과 업적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와 법치주의, 과학 수사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가 남긴 범죄 기록과 추리는 오늘날 블로거뿐 아니라 역사와 법, 사회 복지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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