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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과거제도와 관료 선발, 그리고 사학 12도의 사교육 열풍

이모는오늘도 2025. 9. 30. 20:02

고려시대 과거제도와 관료 선발, 그리고 사학 12도의 사교육 열풍

 
 
고려시대 과거제도는 신분보다는 실력을 중시하는 인재 등용의 새로운 길을 열었으며, 관료 선발의 중심 제도로서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을 뒷받침했다. 또한, 과거제 준비를 위한 사학 12도의 사교육 열풍은 당시 교육 현실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았다.
 
 

고려 과거제도의 도입과 목적

고려 광종 9년(958), 후주에서 귀화한 한림학사 쌍기의 건의로 시작된 과거제도는 한국 교육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이 제도는 단순한 관료 선발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신라의 폐쇄적인 골품제를 극복하고 능력 중심의 인재 등용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중대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방 호족 세력이 점차 중앙으로 진출하는 시대에 왕권을 공고히 하고, 신분이 아닌 능력에 기반한 관료 선발을 목표로 하였다. 과거는 제술과, 명경과, 잡과, 승과로 나뉘었으며, 제술과가 가장 중시되어 문예적 재능과 정책적 식견을 시험했다.
 
과거제는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확립하는 핵심 장치로, 골품제와 음서제에 의존하던 신라와 달리 실력 중심의 문신 관료를 배출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고려 왕조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한 정치개혁의 일환이었다.
 
광종은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과거제를 도입했지만, 이 제도는 광종 사후에도 폐지되지 않고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가장 중요한 관리 선발 제도로 기능했다. 과거제는 시부(詩賦) 등 문예의 능력과 유교경전에 대한 지식을 평가하여 출신 배경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기준으로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였다.
 
 

고려 과거제도의 구성과 특징

고려의 과거제는 제술과(製述科)명경과(明經科)잡과(雜科), **승과(僧科)**로 구분되었다. 제술과는 문학적 재능과 정책 등을 시험하여 문신을 뽑았고, 명경과는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 능력을 시험했으며, 잡과는 법률, 회계, 지리 등 실용 기술학을 시험하여 기술관을 뽑았다.
 
제술과가 명경과보다 훨씬 우대받았고 합격 인원도 많았다는 점은 고려 과거제의 독특한 특징이었다. 또한 고려의 과거제는 조선이나 중국의 과거제와 비교할 때 무과(武科)가 없고 승과가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었다.
 
고려 과거제의 독특한 풍습 중 하나는 좌주문생의 예였다. 시험을 주관하는 고시관인 지공거와 부고시관인 동지공거를 좌주라 불렀고, 합격한 인사들을 문생이라 했는데, 좌주와 문생은 학문적·정치적으로 굳건히 결속하는 양상을 보였다.
 

국자감과 관학 교육의 발전

국자감은 성종 11년(992)에 창설된 고려의 최고 교육기관이었다. 국자감은 '6학 4계급'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국자학(문무관 3품 이상의 자손), 태학(문무관 5품 이상의 자손), 사문학(문무관 7품 이상의 자손), 율학·서학·산학(문무관 8품 이하 아들과 서인)으로 구분되었다.
 
국자감의 특징으로는 **묘학제(廟學制)**가 있었다. 공자를 위시한 유교 성현들을 제사지내기 위한 문묘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한 학당이 별도로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문묘와 학술기관의 융합 기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조선의 성균관으로 이어졌다.
 

고려 관료 선발과 국자감

고려의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은 과거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인재를 양성했다. 국자감은 문무관 자손을 대상으로 ‘6학 4계급’ 교육 제도를 운영하며 유교 경전을 가르쳤다. 그러나 국자감은 공립 교육기관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한계가 있었고, 이에 따라 공교육 체계가 점차 약화되었다.
 
 

사학 12도와 사교육 열풍의 배경 및 실체

고려시대 사교육의 대표적 형태인 사학 12도는 최충을 비롯한 유학자들이 설립한 사립 교육기관으로, 과거 합격을 위한 실질적 학문과 시험 대비 교육을 제공했다.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12개의 사학은 개경 근교의 귀법사, 용흥사 등에서 '하과'라고 하는 여름 합숙 과외를 실시하며 과거 준비에 최적화된 교육 체계를 이뤘다.
 
특히 하과 기간에 실시된 ‘각촉부시’와 같은 시 짓기 대회는 학문적 경쟁의 상징이었다. 사학 12도의 교육 방식은 실제 과거 시험 합격률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고, 이는 국자감 중심의 공교육과 경쟁하는 수준이었다.
 

사교육 열풍과 사회적 의미

중국 사신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에서 확인되듯, 고려 사회 전반에 걸친 사교육 열풍은 조기 교육과 함께 ‘족집게 강사’로 대표되는 집중 교육 문화가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한국의 교육열과 교육 사교육 풍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사학 12도는 공교육이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과거 합격을 위한 실용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교육 사각지대를 보완했다. 또한 사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은 고려 말 신진사대부의 근간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고려 과거제와 사학 12도의 역사적 평가

고려시대 과거제도는 중앙집권과 왕권 강화의 상징적 제도였으며, 능력주의 기반의 인재 등용 방식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큰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동시에 사학 12도와 같은 사교육 기관의 발달은 과거 시험을 위한 치열한 경쟁과 교육열을 반영하는 중요한 사회현상이었다.
 
이러한 교육 체계와 문화는 이후 조선시대 성리학적 교육의 발전과 관료제 확립으로 이어졌으며, 오늘날 한국 교육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따라서 고려시대 과거제와 사학 12도는 한국 교육사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주제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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