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란 침입에 맞선 국방 혁신, 광군의 탄생
고려시대 '광군(光軍)'은 947년(정종 2년) 거란의 위협이 본격화되면서 조직된 고려 최초의 대규모 지방 군사 조직입니다. 후진에 유학하던 중 거란의 포로가 되었던 최광윤(崔光胤)이 거란의 고려 침략 계획을 사전에 탐지하고 이를 고려 조정에 보고한 것이 광군 설치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고 세력을 확장하면서 고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고려는 기존의 소규모 군사력으로는 거란의 대규모 침입을 막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약 3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농민 예비군인 광군을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광군의 조직 구조와 운영 체계
광군의 성격과 특징
광군은 상비군이라기보다는 농민 예비군의 성격을 가진 조직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농업에 종사하다가 필요시 군사 활동에 동원되는 형태였으며, 실제로는 전투부대보다는 각종 토목공사와 노역에 주로 활용되었습니다. 현종 초기 개심사 석탑 조성에 광군이 동원된 기록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지휘 체계와 관리 기구
광군의 전국적인 통제를 위해 개경에 광군사(光軍司)가 설치되었습니다. 광군사는 전국의 광군 조직을 관할하는 통수부 역할을 했지만, 실제 지휘권은 지방 호족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고려가 아직 완전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던 상황을 반영합니다.
광군사는 이후 광군도감(光軍都監)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011년(현종 2년)에 다시 광군사로 환원되었습니다. 광군은 '대(隊)'를 기본 단위로 조직되었으며, 개심사 석탑 건설에 46개 대의 광군이 동원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광군에서 주현군으로의 전환과 중앙집권화
현종 시기 지방제도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1012년부터 1018년 사이에 광군은 주현군 중 일품군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이는 고려 전기 중앙집권화 과정의 중요한 사례로, 지방 호족이 지휘하던 군대가 중앙 정부의 직접 통제를 받게 되는 전환점이었습니다.
이러한 개편을 통해 광군은 더 이상 호족들의 사병적 성격을 갖지 않고, 중앙에서 직접 관할하는 정규 지방군으로 변모했습니다. 개편된 일품군은 전투보다는 사원·궁궐·축성 등 각종 공역에 동원되었으며, 광군사가 이를 직접 관장했습니다.
고려의 변방 방어 체계 - 양계 제도의 구축
양계의 설립과 지리적 배치
고려는 북방 이민족과의 국경지대에 양계(兩界)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양계는 동계(東界)와 북계(北界)로 구성되었으며, 일반 행정구역인 5도와는 다른 군사적 성격을 가진 특수 행정구역이었습니다.
동계는 주로 함경남도 남부, 강원도 영동지역, 경상북도 일부(울진군)에 걸쳐 있었고, 여진족과 해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설치되었습니다. 북계는 평안남북도 지역에 위치하여 거란(요)의 침입을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병마사 제도의 운영
양계에는 병마사(兵馬使)가 파견되어 군사와 민사 행정을 총괄했습니다. 병마사는 989년(성종 8년)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정3품 관리로서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병마사는 6개월 임기제로 봄·가을로 교대하며 운영되었습니다.
병마사 기구에는 병마사와 지병마사(3품), 병마부사(4품), 병마판관(5-6품), 병마녹사 등이 설치되어 체계적인 지휘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병마사는 유사시 국왕으로부터 절월지권을 하사받아 독자적인 군사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주진군과 방어진 체계의 구축
주진군의 조직과 특징
양계 지역에는 주진군(州鎭軍)이라는 특수한 지방군이 배치되었습니다. 주진군은 일반 지방군인 주현군과 달리 상비군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병종도 더욱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북계의 주진군은 초군(抄軍), 정용, 좌군, 우군, 보창과 신기, 보반, 백정 등으로 구성되었고, 동계는 초군, 좌군, 우군, 영새와 공장, 전장, 투화, 생천군, 사공 등으로 편성되었습니다. 북계의 병력은 약 4만 명, 동계는 약 1만 1천 명으로 총 14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방어진사와 진장의 역할
양계의 방어주(방어진)에는 방어진사(防禦鎭使)가, 진에는 진장(鎭將)이 파견되었습니다. 방어진사는 5품 이상의 관리로서 해당 지역의 최고 지휘관 역할을 했으며, 부사, 판관, 법조 등의 보좌를 받았습니다.
이들 방어진과 제진은 모두 성곽으로 둘러싸인 무장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며, 각각 독립된 전투 단위로 기능했습니다. 양계의 주진은 안북대도호부(북계)와 안변도호부(동계)에 의해 관할되었습니다.
방수군과 최전방 방어 체계
고려 최전방에는 방수군(防戍軍)이라는 특수 부대가 주둔했습니다. 방수군은 남도에서 번상(番上) 형태로 파견된 군대로, 중앙에서 파견된 방수장군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방수군은 주진군과는 다른 성격의 부대로 국경 방어 임무를 전담했으며, 견벽고수(堅壁固守) 전술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천리장성과 물리적 방어선 구축
천리장성의 건설과 규모
고려는 거란의 3차 침입을 막아낸 후 더욱 확실한 국경 방어를 위해 1033년(덕종 2년)부터 천리장성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평장사 유소(柳韶)의 책임 하에 진행된 이 공사는 1044년(정종 10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천리장성은 서쪽 압록강 하구에서 동쪽 도련포(함경남도 동해안)까지 이어지는 총 길이 약 1,000여 리(400km)의 대규모 석성이었습니다. 높이와 두께가 각각 25척으로 축조되었으며, 실측 결과 지역에 따라 높이가 약 4-7m에 달했습니다.
천리장성의 전략적 의미
천리장성은 단순히 새로 건설된 것이 아니라 고려 초기부터 북방에 축성된 여러 성들을 연결하고 보강한 종합적인 방어 체계였습니다. 이는 압록강과 개마고원이라는 자연적 방어선을 최대한 활용한 지정학적으로 우수한 방어선이었습니다.
광군과 변방 방어 체계의 역사적 의의
중앙집권화 과정의 반영
광군에서 주현군으로의 전환 과정은 고려 전기 중앙집권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지방 호족의 사병에서 시작하여 중앙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정규군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고려 국가 발전 단계를 상징합니다.
효과적인 국방 체계 구축
광군과 양계 방어 체계는 고려가 거란의 3차 침입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이후 여진족의 위협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 핵심 요소였습니다. 특히 귀주대첩(1019년)에서의 승리는 이러한 방어 체계의 우수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입니다.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 미친 영향
고려의 강력한 방어 체계는 고려-송-요 삼국 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고려가 거란의 침입을 막아냄으로써 동아시아 국제 관계의 안정에 기여했으며, 이는 한반도가 중국에 직접 종속되는 것을 방지한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고려시대 광군과 변방 방어 체계는 단순한 군사 조직을 넘어서 국가 발전 단계와 대외 관계, 지정학적 특성을 모두 반영한 종합적인 국방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체계를 통해 고려는 약 500년간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한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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