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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 왕건의 29번 결혼, 후삼국 통일을 위한 정략혼인의 전략

이모는오늘도 2025. 9. 7. 10:29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王建)은 평생 29번 결혼을 통해 29명의 부인을 두었다.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전국 각지 호족들과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결혼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였으며, 이를 통해 고려의 기틀을 마련했다.
 
 

고려 태조 왕건의 29번 결혼, 후삼국 통일을 위한 정략혼인의 전략 / 역사저널 그날 캡처

 
 
 

고려 태조(왕건)의 29인 후비 일람

아래 표는 태조 왕건이 맞이한 29명의 후비와 이들의 배경을 정리한 것이다.

번호 후비 이름 아버지 관직 ·성명 출신지
1 신혜왕후 유씨 이중대광 유천궁 정주 (경기도)
2 장화왕후 오씨 다련군 오○(多憐君) 나주 (전라도)
3 신명순성왕태후 유씨 태사 내사령 유긍달 충주 (충청도)
4 신정왕태후 황보씨 태위 삼중대광 황보제공 황주 (황해도)
5 신성왕태후 김씨 잡간 김억렴 경주 (경상도)
6 정덕왕후 유씨 시중 유덕영 정주 (경기도)
7 헌목대부인 평씨 좌윤 평준 경주 (경상도)
8 정목부인 왕씨 삼한공신 태사 삼중대광 왕경 명주 (강원도)
9 동양원부인 유씨 태사 삼중대광 유금필 평주 (평안도)
10 숙목부인 대광 명필 진주 (경상도)
11 천안부원부인 임씨 태수 임언 경주 (경상도)
12 흥복원부인 홍씨 삼중대광 홍규 홍주 (충청도)
13 후대량원부인 이씨 대광 이원 합주 (경상도)
14 대명주원부인 왕씨 내사령 왕예 명주 (강원도)
15 광주원부인 왕씨 대광 왕규 광주 (경기도)
16 소광주원부인 왕씨
17 동산원부인 박씨 삼중대광 박영규 승주 (전라도)
18 예화부인 왕씨 대광 왕유 춘주 (강원도)
19 대서원부인 김씨 대광 김행파 동주 (황해도)
20 소서원부인 김씨
21 서전원부인 미상 미상
22 신주원부인 강씨 아찬 강기주 신주 (황해도)
23 월화원부인 대광 영장 미상
24 소황주원부인 박씨 원보 순행 황주 (황해도)
25 성무부인 박씨 삼중대광 박지윤 평주 (평안도)
26 의성부원부인 홍씨 태사 삼중대광 홍유 의성 (경상도)
27 월경원부인 박씨 태위 삼중대광 박수문 평주 (평안도)
28 몽량원부인 박씨 태사 삼중대광 박수경 평주 (평안도)
29 해량원부인 대광 선필 해평 (경상도)

표 설명:

  • ‘왕후’ 칭호를 받은 적실(嫡室)과 ‘부인’ 칭호를 받은 첩실(妾室)을 함께 포함.
  • 출신 지역 및 가문을 통해 전국 각지 호족과의 정치적·혼인 동맹을 확인할 수 있음.
  • 한 집안에서 복수의 후비가 배출된 경우(예: 정주 유씨, 광주 왕씨, 평주 박씨 등)와 자매혼·근친혼 등의 특징이 두드러짐.

 
 

 
 

고려 태조(왕건)의 29명 후비 관련 일화들

고려사 등의 사료에 기록된 태조 왕건과 29명 후비들에 관한 다양한 일화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비 신혜왕후 유씨의 비구니 일화

만남과 이별의 로맨스
왕건이 궁예의 부장으로 정주를 지나던 중 버드나무 아래에서 만난 운명적 첫사랑 이야기다. 왕건이 "누구의 딸이냐?"고 묻자 "이 고을 장자 집 딸입니다"라고 답한 후, 그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러나 왕건이 떠난 후 소식이 끊기자 신혜왕후는 정절을 지키고자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왕건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황급히 찾아가 혼인했다.

 

궁예 축출을 독려한 현명한 내조
918년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즉위할 때, 신혜왕후는 "의(義)로써 탄학함을 물리치는 것은 예부터 매우 당연한 일로써, 아녀자인 나도 싸울 터인데 하물며 대장부는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손수 갑옷을 입혀주며 혁명을 독려했다.

 

제2비 장화왕후 오씨의 나뭇잎 일화

지혜로운 나뭇잎 전설
왕건이 나주 완사천에서 갈증이 나 우물가 아가씨에게 물을 청했을 때, 그녀가 물을 담은 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 주었다. 왕건이 이유를 묻자 "목이 마르다고 물을 급히 마시면 체하는 법"이라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현명함을 보였고, 왕건이 그녀의 지혜에 감탄하여 청혼했다는 이야기다.

 

용꿈과 혜종 탄생
장화왕후는 "포구의 용이 뱃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이후 고려 2대 왕이 되는 혜종을 낳았다. 이는 왕통을 이을 아들의 탄생을 예고하는 신비로운 일화로 기록되었다.

 

자매혼과 시침 일화들

김행파의 두 딸 - 대서원부인과 소서원부인
동주(현 황해북도 서흥) 호족 김행파는 왕건이 서경에 행차했을 때 자신의 두 딸에게 하룻밤씩 번갈아 왕건을 시중들게 했다. 그러나 이후 왕건이 다시 찾지 않자 두 자매는 모두 비구니가 되었다. 왕건이 이를 알고 불쌍히 여겨 서경에 대서원과 소서원 두 절을 지어주고 각각 전지와 노비를 주어 거주하게 했다.

 

광주 왕씨 자매혼
광주 호족 왕규는 자매 둘을 모두 왕건의 부인으로 들였으며(광주원부인, 소광주원부인), 후에 혜종에게도 딸을 시집보내는 등 삼중 혼인동맹을 맺었다.

 

정략혼의 대표 사례들

신라 왕실과의 이중 혼인
935년 신라 경순왕이 항복할 때, 왕건은 "신라의 종실(宗室)과 혼인하여 생구(甥舅)의 친밀함이 오래 가고자 하노라"며 경순왕의 백부 김억렴의 딸을 신성왕태후로 맞았고, 동시에 자신의 맏딸 낙랑공주를 경순왕에게 시집보내는 이중 혼인을 성사시켰다.

 

견훤 사위와의 혼인
왕건은 후백제 견훤의 사위 박영규의 딸도 동산원부인으로 취하여 **"명실 공히 혼인 면에서도 후삼국 통일을 달성"**했다.

 

호족들의 적극적 혼인 제안

시침(侍寢) 풍습
당시에는 손님을 환대하는 뜻에서 딸을 시중들게 하는 '시침' 관습이 있었다. 이는 정식 혼인이 아닌 일종의 접대 방식이었으나, 만약 임신이 되면 왕건의 부인이 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수절하거나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도 했다.

 

자녀 출산과 가문의 영향력

신명순성왕후 유씨의 다산
29명의 부인 중 가장 많은 자녀를 낳은 것은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씨로 총 5남 2녀를 두었다. 이는 왕건이 이 왕비와 특별히 사랑이 깊었거나, 충주라는 전략상 요충지 출신이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성비의 불균형
29명의 부인에게서 난 자식이 25남 9녀로 자연스럽지 않은 성비를 보이는데, 이는 아들을 낳지 못한 여성들이 다른 사람과 재혼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정치적 계산과 인간적 배려

후당의 공식 인정
933년(태조 16) 후당 명종이 태복경 왕경 등을 보내 신혜왕후를 "하동군부인"으로 공식 책봉하며 "국가 대사를 좋은 계책으로 보좌하였으며 부인으로서 총애와 우대를 받아 왔었다"고 치하했다.

 

이러한 일화들은 왕건의 29번 혼인이 단순한 개인적 욕망이 아닌 후삼국 통일을 위한 치밀한 정치적 전략이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각 후비들과의 인간적인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들을 배려하는 왕건의 모습도 함께 기록되어 있어 천년 전 혼인 정치의 복잡한 면모를 드러낸다.

 

 

 
 
 
 
2025.09.06 - [한국, 모든 것의 역사] - 고려 건국 과정과 역사적 의미 : 왕건이 세운 새로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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