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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위한 숨은 영웅들 : 근현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

이모는 2025. 8. 8. 20:31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숨은 이야기

우리 근현대사의 독립운동사는 주로 남성 위인을 중심으로 기록되어왔습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같은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며 독립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존재합니다. 오늘은 이 숨은 영웅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1. 유관순만이 전부가 아니다 – 김란사, 김마리아, 권기옥

유관순 열사는 3·1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지만, 그 이전과 이후에도 많은 여성들이 투쟁의 길을 걸었습니다.

국제무대에서 조선을 외친 최초의 여성 외교관, 김란사

1889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김란사는 이화학당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간 최초의 조선인 여성 유학생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유학 기간 동안도 조선 독립을 알리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가 열리자 그는 조선의 독립 청원서를 전달하려 했지만 일본 측의 방해로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한 해외 동포들은 “김란사 선생이 아니었다면 세계무대에서 조선의 독립 의지는 더 늦게 알려졌을 것”이라 평가했습니다.
그는 “조선의 독립은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권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습니다. 비록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했지만, 평생 해외에서 독립 외교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근현대 여성 독립운동가들 : 김마리아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감옥에서도 꺾이지 않은 투지, 김마리아

1884년 충청도 서산에서 태어난 김마리아는 3·1운동 당시 서울의 만세시위를 주도했습니다. 이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여성 의원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회장으로서 국내외 독립운동 자금 모금, 연락망 구축, 선전 활동까지 총괄했습니다.
일제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과 옥살이를 견뎌냈지만, 감옥 안에서도 “우리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다만 조선 사람으로서 싸우고 있을 뿐이다.” 고 선언하며 수감자들에게 독립 의지를 고취했습니다.
해방 후에도 교육과 여성 권익 신장을 위해 힘쓴 그녀의 생애는, 독립운동이 전쟁터 밖에서도 계속됐음을 보여줍니다.

 

 

근현대 여성 독립운동가들 : 권기옥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하늘로 날아오른 여성 도전자, 권기옥

1901년 태어난 권기옥은 어린 시절 평양에서 3·1운동에 참여한 뒤, 일제의 감시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늘을 날아 적을 이기겠다’는 꿈을 품었던 그는 중국 윈난 항공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공군의 유일한 조선인 여성 비행사가 되었습니다. 중국으로 건너간 그가 맡은 임무는 광복군의 비밀 연락 장교. 일본군 동향을 파악하고, 자료와 인력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해방이 전쟁 이전에 찾아와 폭격 임무는 수행하지 못했으나, 그녀의 도전은 당시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2. 나이보다 큰 용기, 이화림과 안성녀

1919년 3·1운동은 어린 학생들에게도 거대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 이화림은 당시 14세였지만, 독립운동가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거사 소식을 전달하는 연락책을 맡았습니다. 총독부의 감시망을 피해 쪽지를 배달하고, 은신처를 마련하는 일은 목숨을 건 임무였습니다. 한 번은 순사들에게 쫓기다 사람들 틈에 섞여 겨우 빠져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활동은 ‘작지만 결정적인 연결 고리’였고, 훗날 독립운동가들은 “그 소녀가 아니었다면 작전이 지연되었을 것”이라고 회고했습니다.
  • 만주와 국내를 오가며 활동하던 독립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한 숙소와 음식, 그리고 자금이었습니다. 안성녀는 독립군에게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고 자금을 모아 전달했습니다. 안성녀는 자신의 집을 비밀 거점으로 개방했습니다. 집 안 한쪽에는 무기와 전단이 숨겨져 있었고, 손님을 가장해 동지들이 드나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제 경찰의 심문과 폭행을 당했지만, 동지들의 이름을 끝내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문을 열어주는 큰언니’로 불렸습니다.

 

3. 집단으로 맞선 해녀 항일운동

제주도의 해녀 봉기는 1932년부터 1935년 사이에 총 200회가 넘게 벌어진 전국에서 유례없는 여성 집단 항일 투쟁입니다.
제주시 구좌읍과 세화리의 해녀들은 일본 상인들의 수탈에 맞서 어장 판매를 거부하고, 경찰서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습니다. 일본은 해녀들의 해산무을 헐값에 강제로 매입하고, 그 차익은 일본 본토로 빼돌렸습니다. 이에 분노한 해녀들이 “우리 물질을 일본에 빼앗길 수 없다”며 북을 두드리며 행진하는 모습은 제주 전역을 움직였고, 이 중 상당수는 모진 고문과 투옥을 견뎌냈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4. 알려지지 않은 뒷바라지 – 그림자 속의 여성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최전선뿐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채 그림자 속에서 수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 감옥에 수감된 독립운동가에게 음식을 몰래 넣어주고, 옥중에서의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바느질, 식료품 장사, 심지어는 일본인 상인들과의 거래를 가장한 비밀 모금도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정식 기록에 남지 않아 오랫동안 ‘이름 없는 공로자’로 불렸습니다.

 

5.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들

최근 학계와 정부는 잊힌 여성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정부 포상 기준이 완화되며, 일기·편지·신문기사 등 다양한 사료를 근거로 서훈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가보훈부는 여성 독립운동가 전시관을 운영하고, 청소년 교육 자료를 만들어 차세대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학생, 주부, 기생, 간호사 등 다양한 신분과 직업을 넘어 목숨을 걸고 투쟁했습니다. 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남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도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작은 이름으로만 남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들은 단지 ‘여성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조국을 위해 자신을 바친 당당한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들이 보여준 불굴의 정신은 오늘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역사 속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희생에 대한 가장 큰 보답일 것입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바로가기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Keyword/%EC%97%AC%EC%84%B1%EB%8F%85%EB%A6%BD%EC%9A%B4%EB%8F%99%EA%B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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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김란사 관련 기사 바로가기 : https://woman.donga.com/issue/article/all/12/24093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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