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범죄는 존재했습니다. 조선은 유교적 가치를 중시했던 사회였으며, 미성숙한 아동과 청소년을 단순히 처벌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교화와 교정을 통해 변화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범죄 유형과 상황에 따라서는 엄격한 처벌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청소년 범죄의 유형과 특징
- 연령과 신분: 보통 범죄의 주체가 되는 청소년은 10세~15세 사이였고, 신분적으로는 양인(평민)이나 노비 남아가 주를 이뤘습니다. 특히 7세 이하의 아동은 법적으로 책임이 거의 없거나 제한적으로만 인정받았습니다.
- 주요 범죄 유형: 절도나 강도 범죄가 대표적이었으며, 돌이킬 수 없는 큰 범죄보다는 생활형 범죄가 많았습니다. 그에 따라 처벌의 수위 역시 범죄의 종류, 피해 정도, 청소년의 연령에 따라 달랐습니다.
처벌 방식과 사회적 인식
- 나이별 처벌 차등: 조선의 법전인 '대명률' 등에서는 15세 이하 아동과 청소년에 대해 범죄의 책임을 달리 두었습니다. 7세 이하 아동은 범죄의 주체로 보지 않았고, 10세 이상~15세 미만 청소년도 어른에 비해 상대적으로 죄를 감형 혹은 용서받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 유교적 교화 중시: 국왕은 청소년의 죄를 용서하려는 태도를 보였으나, 신하들 중 상당수는 법에 따라 엄격히 다스릴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한 번의 관용이 또 다른 범죄의 발생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예방적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차별적인 처벌과 예외
- 성범죄 및 중범죄: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현재보다 훨씬 강력하게 처벌했습니다. 예컨대 12세 이하의 어린 여자아이를 강간한 경우 무조건 교수형(사형)에 처했고, 청소년 간에도 중범죄는 성인과 비슷한 처벌이 이루어진 예가 있습니다.
- 가족 내 범죄(불효 등): 부모나 조부모에게 해를 가하는 중범죄는 매우 무겁게 다스려 졌으며, 오히려 기타 범죄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기도 했습니다.
일화 : 숙종 7년(1681년) 한양, 9살 아이 살인 사건
이 사건은 9살 난 남자아이가 이웃에 사는 11살 아이와 싸움 도중 우발적으로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사례입니다. 당시 조선의 형법은 7세 이하 아동은 범죄 책임을 지지 않으며, 10세 이상 15세 미만 청소년도 완전한 성인 책임과 다르게 감형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두고 있었습니다.
- 사건 경위 : 두 아이는 작은 다툼으로 몸싸움을 벌였으나, 생각보다 싸움이 격해지면서 11살 아이가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 사법 처리 : 사건이 법정에 이르자 9살 아이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으나, 당시 관습과 판례에 따라 어린아이에게는 사형 집행이 유보되었습니다.
- 재심과 감형 : 해당 사건은 왕명에 의해 재심을 거쳐, 아이의 미성숙함과 우발적 범행임을 참작해 형이 감경되었고, 소년교화소류(현대적 관점에서 보호관찰과 유사한 기관)에 보내져 교화와 교육을 받도록 조치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사례는 조선 법 체계가 어린아이의 범죄 책임을 엄격히 묻기보다는 보호와 교화에 중점을 두었던 점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실제 처벌은 법의 원칙과 현실적 인간애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판단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화 : 세종 20년(1438년), 성균관 유생들의 성범죄 미수 사건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성균관(당시 국가 최고의 교육기관) 유생들이 여성을 강제하려다 피해자가 탈출하면서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습니다.
- 사건 내용 : 몇몇 유생들이 여성에게 접근해 성범죄를 시도했고, 피해 여성은 간신히 도망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 법적 조치 : 해당 유생 중 한 명은 대명률에 따라 장 80대의 형(신체에 큰 충격을 주는 곤장형)을 받았고, 일부는 관직 박탈, 집안 징계 등이 내려졌습니다.
- 당시 사회적 의미 : 조선에서 특히 12세 이하의 어린 여아를 상대로 한 강간 범죄는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형벌이 무거웠으며, 이 사건은 유생이라는 신분적 특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법 집행이 이루어진 예로 기록됩니다.
이 사례는 조선 사회가 신분과 연령에 따라 범죄 처벌에 차등을 두었으나, 성범죄 특히 미성년자 대상 범죄에는 매우 강경한 태도를 취했음을 방증합니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의 변화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청소년 범죄에 대한 제도적 접근도 변화합니다. 일제는 1942년 '조선소년령'을 공포하고 20세 미만을 소년으로 규정, 보호처분과 소년심판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청소년의 범죄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 규범, 가족과 지역사회의 역할이 강하게 작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조선시대의 청소년 범죄와 처벌 방식은 당시의 사회적 가치와 윤리 의식, 그리고 공동체가 갖는 청소년 교육 및 성장에 대한 무게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범죄에 대한 무조건적 응징보다는 인간적 성장과 교화를 중시했던 선조들의 고민은 오늘날에도 사회적 논의의 중요한 화두가 됩니다.
조선시대의 실제 판례와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현재 청소년 범죄 대책과의 차이점 및 유사점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 조선시대 연쇄살인범 기록들 : 잊혀진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