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시에 위치한 세종대왕릉은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함께 잠들어 있는 신성한 공간입니다. 한글 창제의 위대한 업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성군의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역사 속 이야기와 함께 그 의미를 되새겨보겠습니다.
세종대왕릉의 역사와 특별함
세종대왕릉(영릉, 英陵)은 조선왕릉 최초의 부부 합장릉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원래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릉(세종의 부모인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 서쪽에 자리했던 이 능은 1469년(예종 1년) 현재의 여주로 이장되었습니다.
이장의 배경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습니다. 세종 사후 왕실에 연이은 불행이 일어나자, 당시 지관과 풍수지리가들은 능의 위치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특히 세종의 아들들인 문종의 단명과 단종의 왕위 찬탈, 세조의 아들 의경세자의 요절 등이 계속되면서 능터가 좋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결국 예종이 부왕 세조의 유명을 받들어 영릉을 여주로 이장했는데, 이곳은 천하의 명당으로 불렸습니다. 영릉을 여주로 옮긴 후 조선의 국운이 100년 더 연장되었다는 '영릉가백년(英陵加百年)'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사랑 이야기
세종대왕릉에는 왕과 왕비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소헌왕후 심씨는 1395년 청송 심씨 가문에서 태어나 1408년 14세의 나이로 12세의 충녕군(후의 세종)과 혼인했습니다. 당시에는 충녕군이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1418년 양녕대군이 폐세자되면서 충녕대군이 왕세자가 되었고, 같은 해 세종으로 즉위했습니다.
소헌왕후는 세종이 왕위에 오른 직후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친정아버지 심온이 역모죄로 사약을 받아 죽임을 당하면서 친정이 풍비박산 났고, 왕비로서의 위상마저 위태로워졌습니다. 당시 신하들은 "반역자의 딸은 왕비가 될 수 없다"며 소헌왕후의 폐비를 주장했지만, 세종은 끝까지 아내를 지켜냈습니다.
특히 감동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세종이 멀리 사냥을 나간 사이 궁에 불이 났는데, 당시 임신한 몸으로 있던 소헌왕후가 직접 진두지휘하여 불을 진압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세종은 자신의 치세가 있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부인인 소헌왕후에게 그 공을 돌렸다고 전해집니다.
세종대왕의 흥미로운 일화들
세종대왕릉을 찾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할 세종의 숨겨진 일화들이 있습니다.
음악을 사랑한 예술가 왕
세종은 셋째 아들로 태어나 왕위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아버지 태종이 17세의 그에게 "편안히 즐기기나 하여라"며 여러 악기를 하사했습니다. 이때부터 거문고와 가야금에 몰입한 세종은 형들을 가르쳐 줄 수준까지 이르렀고, 실록에는 악기를 통해 양녕대군과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육식을 사랑한 미식가 왕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고기를 좋아하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평생 비만으로 인한 성인병으로 고생했습니다. 고기반찬이 없으면 수저를 들지 않을 정도였고, 태종은 삼년상 중에도 "고기반찬을 주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아들의 육식 사랑을 걱정했습니다.
백성을 위한 혁신적 정책들
세종은 시대를 앞선 복지 정책을 펼쳤습니다. 궁에서 일하는 노비 여성에게 출산 전 한 달, 출산 후 100일의 출산휴가를 제정했고, 남자 노비들에게도 부인이 아이를 낳으면 30일간의 육아휴가를 주었습니다. 또한 90세가 넘은 노비에게는 장수의 의미로 쌀 약 288kg을 제공하도록 명했습니다.
신하들과의 소통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신숙주와 어의사건'입니다. 어느 날 세종이 늦은 밤 집현전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확인해보니 신숙주 학사가 책을 읽다가 잠든 것을 발견했습니다. 세종은 자신의 옷을 벗어 내관에게 신숙주를 덮어주라고 했고, 잠에서 깬 신숙주는 자신을 덮고 있는 것이 임금의 옷임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이런 극진한 대접으로 학사들은 더욱 열심히 학문에 몰두했습니다.
세종대왕릉 구조와 볼거리
세종대왕릉은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내는 능 중 하나입니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주산인 칭성산을 뒤로 하고 중허리에 봉분을 이루고 있으며, 지세는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 모란반개형(牧丹半開形)을 이룬다고 합니다.
능의 구조를 살펴보면, 하나의 봉분 아래 석실 두 개를 붙여 왕과 왕비를 함께 안치한 동봉이실 합장릉으로, 서실은 세종의 돌방이며 동실은 소헌왕후의 돌방입니다. 능 앞에는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 제사 음식을 준비하던 수라간, 능을 지키는 관리가 살던 수복방이 있고, 정자각 동편에는 능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관람 정보 및 찾아가는 길
기본 정보
- 위치: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로 269-10
- 관람시간: 3월~10월 09:00~18:30 (입장마감 18:00), 11월~2월 09:00~17:30 (입장마감 17:0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 입장료: 성인(만19세~64세) 500원, 청소년·어린이(만7세~18세) 300원
- 무료관람: 만6세 이하, 만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
교통편
- 지하철: 경강선 세종대왕릉역 하차 후 버스 이용
- 버스: 세종대왕릉역에서 950, 961-1, 955-1, 962번 버스
- 자가용: 영동고속도로 여주IC 또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서여주IC 이용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곳들
세종대왕릉을 방문하면 같은 입장료로 효종대왕릉(영릉, 寧陵)도 함께 관람할 수 있습니다. 두 능은 700m 거리에 있으며, 이를 잇는 오솔길은 조붓한 흙길로 5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만 개방됩니다.
또한 입구에 있는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서는 세종대왕과 효종대왕의 생애와 업적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으며, 세종대왕이 발명한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 각종 과학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어 교육적 가치가 높습니다.
세종대왕릉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우리 역사와 문화의 소중한 유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입니다. 한글 창제의 위대한 업적뿐만 아니라 백성을 사랑하고 학문을 중시했던 성군의 정신을 되새기며, 그와 평생을 함께한 소헌왕후의 내조 정신까지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여주를 방문하신다면 꼭 한 번 들러 우리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조선왕릉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s://royal.khs.go.kr/ROYAL/contents/menuInfo-rtm.do?grpCode=r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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