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왕실은 엄격하고 권위적인 공간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따뜻하게 동물을 아끼고 사랑했던 왕들과 궁궐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조선의 임금들은 단순히 취미 이상의 이유로 동물을 기르고, 때로는 그들만의 특별한 의미를 담아 반려동물을 돌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 왕실이 키운 동물들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 그리고 왕실 동물관의 문화적 배경을 조명해봅니다.
1. 조선 왕실의 ‘펫 문화’와 동물관
조선 왕실이 길렀던 동물은 개와 고양이, 매, 말 같은 평범한 동물뿐 아니라, 사슴, 두루미, 원숭이, 심지어 외국에서 온 코끼리, 낙타, 앵무새, 학 등까지도 다양했습니다. 이 동물들은 왕의 취향이나 관리 목적에 따라 선택되었으며, 외국에서 온 희귀 동물은 외교의 상징 또는 국가 권위의 표현으로 길러졌습니다.
특히 ‘동물관’이라는 개념은 오늘날의 동물원처럼 공식적이지는 않았지만, 궁궐 내 정원이나 별도의 공간에 여러 동물을 관리하고 전시하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외국 사신들이 바치는 진귀한 동물이나 국내에서 수집한 동물들이 대상이었죠.

2. 조선 왕실의 대표적 반려동물
사냥개와 궁중 애완견
개는 왕의 사냥과 관련된 중요한 동물이었지만, 단순한 도구를 넘어 왕이 직접 돌보기도 했습니다. 정조는 사냥개를 특히 아꼈으며, 왕비나 후궁들은 작은 개를 데리고 정서적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반려견에게 방울을 달아 뛰놀게 하는 장면이 실록에도 남아 있습니다.
고양이, 조선 최고의 인싸 반려동물
조선 19대 왕 숙종은 조선 최고의 ‘애묘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숙종은 부왕의 능 참배길에서 만난 굶주린 노란 고양이를 ‘금덕’이라 이름 짓고 정성껏 돌봅니다. 금덕이 새끼 고양이를 낳자 ‘금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금손을 곁에 항상 두며 밥상에서 직접 고기 반찬을 먹이며 각별한 애정을 쏟았습니다.
1720년 숙종이 승하하자, 금손이는 식음을 전폐하고 슬피 울며 세상을 떴고, 인원왕후는 숙종의 명릉 근처에 금손을 묻어주게 했다는 감동적인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 일화는 김시민의 ‘동포집’ 및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도 전해집니다.

매, 왕권의 상징
매는 왕실에서 권위와 리더십의 상징으로 길러졌으며, 매사냥은 임금의 여가와 훈련, 그리고 권력 과시의 수단이었습니다. 응방이라는 특별한 관청이 매와 사냥개 돌봄을 전담할 만큼 매는 왕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3. 희귀 동물과 외교의 상징
조선은 여러 차례 명나라 등 외국에서 코끼리, 낙타, 원숭이, 앵무새 같은 희귀 동물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세종 때 명나라에서 건너온 코끼리는 왕실의 큰 볼거리였지만, 한반도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오랫동안 살지 못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이런 동물들은 주로 왕실 정원의 별도 공간에서 키우며 특별하게 관리했습니다.
사슴과 두루미는 장수와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로 정원이나 각별한 공간에서 길렀습니다. 호랑이는 용맹함과 권위의 상징으로, 때로는 왕이 특별한 의식에서 호랑이를 직접 상대하며 권력을 드러내기도 했죠.
- 코끼리의 운명
1411년 일본에서 선물받은 코끼리는 하루에 콩 4~5말을 먹어 엄청난 곡식을 소모했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코끼리는 곡식 절약과 민생 문제로 논란이 많았고, 결국 사람을 밟아 죽이는 사고까지 일어난 뒤 귀양을 다니다 세종 때 죽었습니다. - 앵무새와 두루미
앵무새는 돌을 닦을 정도의 지능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기도 했으며, 두루미와 사슴은 선비의 고고함·장수의 상징으로 각별하게 키워졌습니다. 특히 두루미는 깃털을 잘라 날지 못하게 하고, 집 마당에서 몇 년씩 길렀다는 추론도 있습니다.
4. 동물 때문에 혼났던 왕들? 사연 있는 조선 왕실의 일화
연산군은 동물을 몹시 사랑했는데, 너무 많은 사냥개를 궁궐에서 직접 기르며, 심지어 군대 행차에는 사냥개 10마리로 어가(임금의 행차 차량) 를 호위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신하들은 “조회에 사냥개가 드나들어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라며 왕에게 동물 기르기를 반대하는 상소를 끊임없이 올렸습니다. 연산군은 고양이도 각별히 챙겼는데, 궁중에서 쥐를 잡던 고양이가 사라지자 신하들을 직접 신문하도록 명할 만큼 동물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습니다.
성종은 겉으로 “동물을 좋아하지 않으니…” 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지만, 외국에서 진기한 동물이 들어오면 항상 받아들이며 돌봤고, 실제로는 사슴, 노루, 원숭이, 두루미, 백조 등 온갖 희귀 동물을 궁에서 길러 먹이고 보살폈습니다. 신하들이 왕의 정사가 흐트러질까 걱정하여 잦은 반대를 하기도 했으나 성종은 동물 돌봄에 애착을 보였습니다.

5. 왕실 동물관의 상징과 의미
경복궁 등 궁에는 봉황, 해치(법과 정의를 지키는 신수), 용, 사슴, 두루미 등 다양한 실물 및 상상 동물 조각과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왕실의 애완동물 문화가 단순한 권력자의 취미를 넘어 왕의 권위와 국가적 상징, 신앙적 의미,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상징임을 보여줍니다. 궁궐의 동물 조각상, 왕가의 장신구에 새겨진 봉황·호랑이 등 동물 문양도 모두 문화의 흔적입니다. 하지만 많은 신하들과 유학자들은 '왕이 동물을 기르면 국가에 불길하다'는 미신 혹은 현실적 이유로 왕의 동물관을 끊임없이 문제 삼았습니다. 사냥용 매를 기르면 가뭄이 온다는 소문, 동물에 정을 쏟으면 백성의 곡식이 줄어든다는 우려 등도 잦았습니다.
오늘의 ‘펫팸족’ 문화 못지않게, 조선의 궁궐에도 사랑 받았던 동물과 진한 교감의 순간들이 존재했습니다. 500여 년 전 조선의 왕들도 같은 마음으로 동물을 사랑했고, 그 사랑은 때로 파격적이었으며 때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반려동물에 얽힌 다양한 일화와 풍경이 궁궐 깊숙이 새겨져 있음을, 그리고 왕실의 동물관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국가 권위와 상징, 그리고 인간적인 위로와 사랑을 담았다는 사실을 우리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