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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몽골침입과 대몽항쟁, 팔만대장경 조성의 역사적 의미

이모는오늘도 2025. 9. 17. 17:40

13세기 고려시대 몽골침입은 우리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외침 중 하나였습니다. 약 30년간 지속된 대몽항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닌, 고려인들의 불굴의 민족저항정신이 빛났던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 조성된 팔만대장경은 군사적 저항과 함께 문화적 자존심을 지켜낸 위대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몽골침입과 대몽항쟁, 팔만대장경 조성의 역사적 의미 / 이미지 출처 : 동아출판 2015 개정 교과서(대표저자 노대환)

 

 

몽골의 고려 침입 배경과 과정

고려 몽골 전쟁의 발단은 1225년 몽골 사신 저고여의 피살사건이었습니다. 이를 구실로 1231년 살례탑이 이끄는 몽골군이 1차 침입을 감행했고, 이후 1259년까지 총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몽골은 고려에게 개경환도, 국왕의 친조, 호구조사 실시, 역참 설치, 조정군 파견, 양곡 제공 등 6가지 사항을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과도한 요구는 고려를 완전히 속국으로 만들려는 의도였으며, 고려 조정은 이에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강화천도와 38년간의 대몽항쟁

1232년 최우의 주도로 단행된 강화천도대몽항쟁의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이 결정은 조석 간만의 차가 크고 조류가 빨라 몽골군의 공격이 어려운 천혜의 요새를 활용한 것이었습니다.

 

강화천도에 대해서는 조정 내부에서도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참지정사 유승단과 야별초 지유 김세충은 개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최우는 강압적으로 천도를 추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1270년까지 38년간 지속된 항몽의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처인성·충주성 전투와 민중의 저항정신

대몽항쟁 과정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는 처인성전투였습니다. 1232년 12월 16일, 백현원의 승려 김윤후가 처인부곡민들과 함께 몽골군 사령관 살례탑을 사살한 사건은 고려사에 길이 남을 쾌거였습니다.

 

이후 김윤후충주성전투에서도 70여 일간 몽골군의 포위공격을 막아내며 또 다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승리들은 단순히 군사적 성과를 넘어, 백성들이 하나 되어 외침에 맞선 민족저항정신의 구현이었습니다.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고려군이 끝까지 성을 지켜냈고, 충주에서는 관리들이 도망간 상황에서도 관노비들이 끝까지 싸워 성을 수호했습니다. 심지어 정부에 반기를 들었던 초적들도 몽골군 앞에서는 고려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팔만대장경 조성, 불교문화로 나라를 지키다

1232년 몽골군에 의해 부인사에 보관되던 초조대장경이 불타버리자, 고려는 이를 다시 새기는 거대한 불사를 시작했습니다. 팔만대장경 조성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닌, 부처의 위신력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간절한 염원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1237년 이규보가 지은 「대장각판군신기고문」에는 이러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신통한 힘을 빌어주어 완악한 오랑캐로 하여금 멀리 도망하여 다시는 우리 국토를 밟는 일이 없게 하여 달라"는 간절한 기도문이었습니다.

 

대장도감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 사업에는 화엄종 승려 수기대사가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불타버린 대장경의 인쇄본을 바탕으로 송나라와 거란의 대장경을 참조하여 가장 완벽한 고려대장경을 완성했습니다.

 

1251년 완성된 해인사대장경은 총 81,258매의 경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대장경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불교문화의 걸작을 넘어 고려인들의 문화적 자긍심과 기술력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대몽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교훈

고려시대 몽골침입대몽항쟁은 우리 역사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최씨 무신정권의 삼별초가 1270년 개경환도에 반대하여 진도와 제주도에서 3년간 더 저항한 것도 이러한 항몽의지의 연장선이었습니다.

 

비록 삼별초의 항쟁은 1273년 실패로 끝났지만, 이들의 저항정신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38년간의 대몽항쟁은 세계 최강의 몽골제국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없었던 고려인들의 의지력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팔만대장경 조성은 군사적 저항과 함께 문화적 저항의 상징이었습니다. 전쟁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문화유산을 창조해낸 고려인들의 정신력은 오늘날에도 큰 감동을 줍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대장경은 13세기 고려인들이 남긴 불멸의 유산입니다.

 

고려 몽골 전쟁대몽항쟁의 역사는 외침에 굴복하지 않는 민족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강화천도로 시작된 38년간의 저항은 비록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고려의 자주성을 지켜낸 값진 투쟁이었습니다. 팔만대장경이라는 문화적 결실과 함께 이 시대는 우리 역사상 가장 빛나는 민족저항정신의 시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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