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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물, 유광억 : 100여 차례 대리시험으로 전설이 된 거벽(巨擘)

목차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관리를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독특한 제도였습니다. 관리를 뽑는 공정한 절차로 설계되었으나, 현실은 늘 이상과 달랐습니다. 경쟁이 극심해지고, 신분제 사회의 한계가 겹쳐지면서 부정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했는데, 특히 ‘거벽(巨擘)’이라 불리는 대리시험 전문가 집단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영남 합천 출신 유광억(柳光億)이었습니다. 그는 조선 후기 수십, 혹은 백여 회에 달하는 대리시험 사건으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고, 그의 삶은 단순한 비리 이상의 사회적 함의를 품고 있습니다. 1. 신분과 재능 사이 – 가난한 천재의 고뇌유광억은 명문가 출신도 고위 관료 집안도 아닌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조선은 엄격한 신분사회로, ..

일제강점기 역사의 진실 : 창씨개명의 오해와 실제, 그리고 민중의 저항

목차 창씨개명이란 무엇이었나?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은 1940년 2월 11일부터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조선인에게 일본식 이름(‘씨’와 ‘명’)을 갖도록 강요한 민족동화 정책의 핵심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민사령 개정(1939.11.10)으로 조선 전통의 성명제(姓·名 체계)를 폐지하고, 일본 식민지 내의 모든 조선인이 일본식 씨(氏)를 집안 단위로 등록하고, 이름도 그에 맞게 바꾸도록 제도화했습니다. 표면상 ‘희망자에 한한 신청’이라 했으나, 실상은 전방위적 강압과 불이익, 경찰력 동원을 수반한 ‘강제적 정책’이었습니다. 창씨개명에 대한 대표적 오해1. “자발적”이었다는 주장자주 등장하는 오해 중 하나는 “많은 조선인들이 스스로 일본식 이름을 쓰고 싶어 했고, 창씨개명은 자발적 선택이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직업군 TOP 10 : 관리부터 예술인, 상인까지 그들의 이야기

조선시대는 사농공상(士農工商) 신분제에 따라 다양한 직업군과 그 생계 양식이 존재했습니다. 사회 구조상 양반이 가장 우대받았지만, 실제로 생활을 책임진 직업은 다양했습니다. 아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명 직업 10가지와 이들의 생계방식, 그리고 흥미로운 일화를 곁들여 소개하겠습니다. 문관(文官) - 관리의 삶과 경쟁생계방식:과거시험을 통해 선발되어 국가의 관리로 활동했습니다. 문관은 대개 양반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집안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한학, 유교 경전, 시문 등을 공부합니다. 집 안채에 별도의 서재(사랑채)를 두어 수년간 과거 시험을 준비하며, 가족은 물론 친족의 뒷바라지가 필수적이었습니다. 과거에 급제하면 중앙 또는 지방 관직에 임명되어 관청에서 정기적으로 녹봉(월급)과 쌀, ..

조선시대에도 성형수술이 있었을까? : 기록으로 살펴본 조선의 성형수술

“성형수술” 하면 현대의 기술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겠지만,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놀랍게도 조선시대에도 오늘날 성형수술과 유사한 ‘외모 개조’ 사례와 관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다수의 기록과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조선시대의 실제 사례, 성형에 대한 인식, 그리고 현대와의 차이점을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성형에 해당하는 실제 시술 사례 코 높이기 – ‘코끼리 상아 삽입’까지조선 후기에는 실제로 코를 높이는 수술이 시도되었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자연 코 모양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파라핀을 코에 주입하거나, 심지어 자기 늑골(갈비뼈)에서 일부를 떼어 코에 이식하기도 했습니다. 이 방식은 요즘의 연골 이식과 유사하죠. 하..

기묘한 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요사스러운 이야기들

기묘한 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요사스러운 이야기들조선왕조실록은 국가의 공식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정치‧경제적 사건만 담지 않았다. 실제로 실록에는 이해하기 힘든 괴이한 현상, 정체불명의 귀신, 변이 된 동물, 불길한 징조에 대한 기록 등, 지금도 흥미로운 ‘요사스러운’ 일화가 다수 등장한다. 오늘은 실제 실록에 남은 대표적 기묘담과 그 이면의 인간 심리를 풀어본다. 1. 이두와 정창손의 집에 나타난 "요귀" 이야기성종 17년(1486). 예조판서 유지는 임금 앞에서 이렇게 아뢴다.“성 안에 요괴가 많습니다. 영의정 정창손의 집에는 귀신이 있어 능히 집 안에 기묘를 옮기고, 호조좌랑 이두의 집에도 여귀가 있어 매우 요사스럽습니다. 대낮에 모양을 나타내고 말하며 음식까지 먹는다고 하니, 청컨대..

조선왕조 27명의 왕, 한눈에 보는 연혁과 시대별 흐름 요약

* 조선 27대 왕 순서, 핵심 요약표순번왕명재위 기간직계 계승 (관계) 주요 사건 / 일화 1태조1392~1398정종(아들), 태종(아들)조선 건국, 위화도 회군, 성리학 국가 기반 마련2정종1398~1400태종(형제)1차 왕자의 난, 사병 혁파, 태종에게 양위3태종1400~1418세종(아들)2차 왕자의 난, 과전법, 호패법 등 개혁강행4세종1418~1450문종(아들)한글 창제, 집현전, 과학 발달, 4군 6진 개척5문종1450~1452단종(아들)병약, 정책 계승 노력6단종1452~1455세조(삼촌)숙부 세조에게 쫓겨남, 사육신 사건7세조1455~1468예종(아들)계유정난, 경국대전, 왕권 강화8예종1468~1469성종(아들)단명, 큰 업적 없음9성종1469~1494연산군(아들), 중종(이복동생)경국대..

조선시대에도 ‘이혼’이 가능했을까? : 조선 사회의 결혼과 이별

목차 현대 사회에서 이혼은 개인의 권리이자 선택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과연 조선시대에도 부부가 갈라설 수 있었을까요? 조선시대에도 이혼이라는 개념은 존재했으나, 그것은 오늘날과는 확연히 달랐고, 특히 여성들에게는 매우 제한적이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시대 ‘이혼’이란 무엇이었는지, 계층과 성별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법과 관습, 그리고 실제 기록된 일화들을 다뤄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이혼의 두 얼굴: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완전히 없진 않았다”조선시대에는 이혼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이(離異)’, ‘출처(出妻)’, ‘휴기(休棄)’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부부 해체를 표현했습니다. 주로 남편이 일방적으로 아내를 내치는 형식이 많았고, ‘이혼’이란 일은 남성의 특권에..

조선의 우주를 읽다 : 우리 과학이 담긴 천문기기 베스트 5

우주는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하늘의 이치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세종대왕 시대를 중심으로 우주에 대한 독자적인 관점과 첨단 과학기술이 어우러졌고, 그 결과 다양한 천문관측기기가 탄생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조선인의 ‘우주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대표 천문기기 5가지를 소개합니다. 1. 혼천의(渾天儀) – 우주의 본질을 담다혼천의는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천문 관측기기로, '우주가 둥글고 모든 천체가 규칙적으로 움직인다'는 동양 고유의 우주관을 형상화한 기기입니다. 혼천설(渾天說)을 기반으로 둥근 구 형식의 구조 안에 여러 개의 고리와 관측기구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해, 달, 행성, 별의 위치와 운동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제작:..

조선시대 ‘안견의 몽유도원도’ : 조선판 데스노트의 전설과 실제 일화들

몽유도원도란 무엇인가? 한국 미술사에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자 미스터리한 그림입니다. 몽유도원도는 조선 세종대왕의 아들 안평대군이 1447년에 도화사 화원인 안견에게 그리게 했다는 산수화로, 현실을 벗어난 꿈의 이상향 피안(桃源), 즉 도원(桃源)을 유유히 거니는 듯한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몽유도원도는 일본 덴리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 예술성은 한국 회화사에서 독보적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명작으로서가 아니라, 그림 뒷면에 이름을 남긴 자들이 연이어 비운을 맞았다는 전설적 이야기가 더해지며 '조선판 데스노트'라는 신비로운 별칭까지 붙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올리면 불운이 온다’는 전설의 시작 몽유도원도는 예술성과 별도로, ‘조선판 데스노트’라는..

조선시대 '취업 준비생'의 삶 : 지금과 다르지 않은 취업 전쟁

과거시험, 조선의 취업 전쟁‘취업 준비생’은 오늘날도 빼놓을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지만, 실은 조선시대 역시 청년들의 가장 큰 숙제였다. 당시 ‘취업’은 곧 ‘관직 진출’, 즉 과거시험 합격을 뜻했고, 이를 위해 수많은 선비와 양반가 자제들이 평생을 바쳤다. 조선의 과거 준비생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리고 그들의 현실은 오늘날과 얼마나 닮았을까? 과거시험, 조선 사회의 입시 시스템조선시대의 관직 등용 시험인 과거(科擧)는 주로 양반, 일부 평민 자제들에게 열려 있었으며, 출세와 경제적 안정을 위한 사실상 유일한 통로였다. 과거시험을 통과하면 고위관리가 될 기회가 주어졌고, 이는 사회적 명예와 가족의 안녕, 미래 세대의 신분까지 좌우하는 일이었다. 양반가에서는 아이가 대체로 5~6세가 되면 한자교육..

조선시대 궁녀의 진짜 하루 일과는 어땠을까?

조선시대 궁녀의 진짜 하루 일과와 숨겨진 비화조선시대 궁녀들은 사극이나 드라마에서처럼 로맨틱하거나 유유자적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실상은 치열한 생존과 엄격한 규율, 그리고 파란만장한 사연이 일상에 스며 있었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궁녀들의 리얼한 하루와, 그 이면의 은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여다봅니다. 새벽을 깨우는 분주한 시작궁녀의 하루는 해가 뜨기도 전에 시작됐습니다. 대부분의 궁녀들은 소속된 처소(왕이나 왕비, 세자빈 등)에서 ‘상전’을 모시는 준비에 돌입해야 했죠. 세수간에서는 상전의 세숫물과 목욕물을 준비하고, 침방과 수방에서는 왕실 의복의 바느질과 자수에 매진했습니다. 생과방에서는 왕실의 간식과 후식을, 내소주방과 외소주방에서는 왕과 손님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는 식으로 각..

조선시대 ‘극악’했던 평균 수명과 유아 사망률, 그리고 그 원인

목차 조선시대, 정말 모두 일찍 죽었을까?오늘날 대한민국의 평균 수명은 80세를 넘어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불과 100여 년 전, 조선시대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전국민의 평균 수명은 30~35세 내외로 추정되며, 흔히 말하는 ‘고희’(70세)까지 장수하는 일은 지극히 드문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국왕이나 양반 등 사회적 상류층도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실이었죠. 1. 조선시대 평균 수명의 실태국왕 27명의 실제 사망 나이를 분석하면 평균 46.1세에 불과합니다. 단종 등 요절한 임금을 제외해도 47.3세밖에 되지 않습니다.백성들의 평균 수명은 이보다 더 짧아 30세를 넘기지 못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평균수명 30세’는 결코 어른 대부분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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